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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서 우리들 대부분은 마음의 평온을 좀처럼 얻지 못한다. 그 이유는 엉뚱한 곳에서 찾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훌륭한 것을 얻거나 성취하면 마음의 평온을 찾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런 목표를 달성한다 할지라도, 거기서 얻은 마음의 평온은 금세 사라져버리고 만다.
이유는 간단하다. 물질적인 세계에서 우리는 나약한 존재일 수박에 없기 때문이다. 당신이 손에 넣은 것은 언제고 잃어버릴 수 있다. 당신을 항상 보살피고 지원하는 존재로부터 비롯되는 평온이어야만 변함없이 지속될 수 있다.
근원적 힘과 당신을 연결해야만 진정 지속적인 마음의 평온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마음의 평온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근원적 힘과 당신을 항상 연결해야 한다. 이는 곧 계속 노력해야 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마음의 평온이란 결국 적극적인 움직임의 상태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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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잘못된 방식으로 스스로에게 동기부여를 한다.
원하는 것을 손에 넣고 싶다는 욕구가 그들을 움직인다.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은 강한 동기부여 요인이 될 수 있지만, 거기에는 커다란 대가가 따른다. 바로 ‘늘 뭔가 부족하다’는 기분으로 산다는 점이다. 그리고 설령 원하던 것을 손에 넣었다고 해도 거기서 오는 만족감은 금세 희미해지고, 이제 또 다른 것을 추구하기 시작한다.
이처럼 계속 반복되는 만족의 쳇바퀴 위에서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결국엔 당신 삶의 에너지와 의미를 잃어버리고 만다.
이런 식의 동기부여에서는 모든 에너지를 당신 스스로 만들어내야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다른 방법이 있다. 바로 당신보다 훨씬 커다랗고 강력한 에너지의 원천과, 모든 에너지의 진정한 중심점인 근원적 힘과 연결되는 것이다.
이 힘과 연결되기 위해서 무언가 결핍되었다는 기분을 느낄 필요는 없다. 오히려 당신이 이미 가진 것에 대해 커다란 감사를 느낄수록 근원적 힘으로부터 더 많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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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에게 ‘감사하는 마음’이라는 지각 기관은 저려서 감각이 없어진 발만큼이나 무용하게 느껴진다. 발이 저려서 감각이 없어지면 자꾸 움직여야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다. 마찬가지로 감사의 흐름을 자꾸 반복해서 실천해야만 감사하는 마음의 감각을 일깨울 수 있다. 그래야 진정으로 근원적 힘을 경험할 수 있다. 인내심을 갖고 노력해야 한다.
감사하는 마음은 실제적인 지각 기관이다. 우리 모두의 내면에 존재한다. 꾸준히 노력했는데도 그것을 일깨우지 못하는 사람을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근원적 힘이라는 개념은, 자신이 경험해 본 적은 있으나 뭐라고 말로 정의하지 못했던 어떤 힘에 이름을 붙여주는 계기가 된다. 모든 것을 베푸는 풍요로운 우주의 힘 말이다.
중요한 건, 당신이 그것과 ‘연결되고 교감하는 경험’을 하는 일이다. 그러면 당신 자신보다 훨씬 더 큰 것은 물론 무한하면서도 강력한 어떤 존재가 당신을 도와주고 지원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 필 스터즈, 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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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모순 덩어리다. 유한한 삶 속에서, 무한하기를 바란다. 그 누구도 예외일 수는 없다. 욕심에서도. 모순이란 존재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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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똑같이 살면서 다른 것을 바란다. 혹은 남과 다른 짓을 하면서 같은 결과를 꿈꾼다. 아인슈타인은 이를 미친 짓이라 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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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대신 독점. 나음보다 다름. No1이 아닌 Only1. 이 말들은 유니크하게 달라지라는 게 아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스스로가 되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