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을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일 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급의 밸런스 게임에 도전하게 됩니다. 보통 '잘 하는 것 vs 하고 싶은 것' 또는 '할 수 있는 것 vs 하고 싶은 것' 사이에서 밸런스 게임을 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주목해야 하는 점은 항상 '하고 싶은 것'의 대척점에 현실과의 타협점이 오게 된다는 것이죠.
어렸을 적 장래희망에 대해 고민할 때는 현실적인 요건에 대해서는 많이 고려하지 않습니다. 이 때는 '관심 있는 것', '하고 싶은 것'에서 시작하지만 '잘 하는 것'으로 점차 확대해가는 과정을 겪게 됩니다. 그래서 이 시기는 하고 싶은 것을 하느냐, 지금 잘 하는 것을 하느냐를 주로 고민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좀더 나아가 청년기나 사회 초년기가 되면 현재 보유한 능력('잘 하는 것')에 앞으로의 가능성, 소질 등의 여건들을 고려해 '할 수 있는 것' 또는 '잘 할 수 있는 것'까지 선택지에 넣어 어떤 일을 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지만 '잘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게 되는 경우도 많고 선택지에는 없었지만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일'까지 포함해 다양한 방향으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죠.
어찌어찌 시작한 커리어에서, 첫 선택이 잘 맞아서 승승장구하고 만족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많은 경우에는 잘못된 선택에 방황하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합니다. 나에게 "맞는" 업을 다시 찾기 위해 업계를 바꾸거나, 직무를 바꾸거나, 이직하거나, 퇴사하거나, 자영업을 하거나, 프리랜서나 크리에이터가 되거나, 전문직 준비를 하거나, 학교를 다시 가거나 자격증 공부를 하거나, 다양한 방법들을 시도합니다. 흔히 말해 "젊을 때" 는 이러한 시도들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이죠. "나의 길"을 한시라도 빨리 찾아내고 재정비하기 위해 드는 시간과 노력에 대해서 때론 질타도 받지만 격려와 응원을 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커리어를 쌓은 이후에 방황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입니다. 이 때의 밸런스 게임은 '하고 싶은 일'과 '해 왔던 일' 사이의 선택입니다. 보통 지금까지 '해 왔던 일'은 꽤 많은 시간을 들여 업력을 쌓아왔고 최상은 아니더라도 기본 이상은 인정받을 확룔이 크죠. 그렇기에 해 왔던 일을 버리고 이제부터는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선택하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이럴 경우 주변에서 만류하는 경우도 많고 스스로도 선택에 대한 후폭풍을 감당하기 어려워 망설이다가 시기를 놓칠 수도 있죠.
우리는 왜 자꾸 '하고 싶은 일'로 회귀하는 것일까요? 어쩌면 이러한 회귀는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라는 본능일 수도 있고, 인생의 한 번쯤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해 보겠다'는 단단한 마음가짐의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일이 나를 조금씩 좀먹고 있었다거나, 단순히 현재의 특수한 상황으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아 모든 것이 의심스러워지는 와중에 특별히 커리어적인 고민이 더욱 크게 포함되었을 수도 있죠.
여러 원인들이 있겠지만 '왜 하필 이 시기에 커리어를 두고 방황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게 어떤 원인이든간에 현재 상황이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앞서 커리어 고민은 '하고 싶은 일'과 다른 가치있는 일들간의 밸런스 게임이라고 언급했는데, 밸런스 게임은 반드시 양 저울에 올라간 안건이 비슷한 중요도와 가치를 가져야 합니다. '하고 싶은 일'은 마법같은 단어라, 그 일을 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원망하게 되거나 무모하고 성급한 선택을 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즉, '하고 싶은 일'이 항상 정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잘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 '해 왔던 일' 모두 '하고 싶은 일'과 동등하거나 유사한 가치를 지닙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방황의 시기가 찾아왔을 때,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차분히 정리해보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유명한 심리학자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영아기부터 노년기까지 전 생애를 걸쳐 발달한다고 합니다. 인생의 중반을 넘어가는 시기에도 왜 나는 무엇 하나 결정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을까, 라고 고민하고 있다면 그 방황은 평생의 발달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편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