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역설적인 존재다. 무리에 섞여 살아야 하지만 무리에 동화돼서는 살 수 없는 존재다. 무리 안에 머물면서도 고유의 정체성을 살려야 한다. 전체의 한 부분이면서도, 전체로부터 독립되어야 하는 존재가 바로 우리 인간이다. 이는 우리 각자에게 중대한 ’삶의 과제‘를 안긴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정체성’을 살리면서, 무리에 ‘소속’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만약 소속감을 위해 나의 정체성을 포기한다면 어떻게 될까? 무리의 한 부품이 될 뿐이다. 상명하복의 조직에서 위에서 시키는 대로 일해야 하는 경우가 그런 예다. 개인의 정체성과 고유함이 사라지는 그런 조직을 버티는 건 힘들다. 직원들이 뛰쳐나온다. 정체성을 버리면 소속감도 따라 버리게 된다. 


반대로 나의 정체성을 위해 무리에 소속되기를 거부하면 어떻게 될까? 무리의 기대와 규칙은 무시하고 제멋대로 군다면 무리에서 왕따가 될 것이다. 타인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인간은 그런 외로움을 견딜 수가 없다. 영혼이 상한다. 자기 존재가 망가지는 걸 느낀다. 그러므로 무리에서 벗어나면 개인의 정체성 역시 지킬 수 없다.


그렇기에 인간은 ‘정체성’과 ‘소속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한다. 하나를 잃으면 둘 모두를 잃게 된다. 둘 모두를 잡아야 우리는 인간으로서 제대로 존재할 수 있다. 수십만 년 동안 인간은 그런 식으로 진화해 왔다. 그렇다면 그 둘 모두를 잡는 방법은 무엇일까? 나의 고유함으로 공동체에 기여할 때, 우리는 무리에 소속되면서도 개인의 독립된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좋은 직장과 나쁜 직장을 가르는 분명한 기준도 얻을 수 있다. 좋은 직장이란 소속감과 자기 정체성 둘 모두를 잡을 수 있도록 장려하고 지원하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우리는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대개의 직장은 무리에 대한 소속만을 강조할 뿐, 개인의 독립된 정체성은 무시한다. 직원에게 조직의 부품이 될 것을 요구한다. 개인의 고유함으로 공동선에 기여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확장해 ‘지금의 나보다 더 큰 나’가 되려는 것을 조직의 권력자들은 싫어한다.


대개 권력자들은 자신과 비슷한 특정 유형의 인간상을 최고로 여기고 그 유형을 좇아 모두가 비슷해질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각자가 개인의 고유함을 주장하는 걸 권력자들은 혼란으로 받아들인다. 조직의 성과를 낮추는 요인으로 여긴다.


그러나 진실은 그 반대다. 각자가 자신의 고유함으로 일에서 성과를 낼 때, 그 일은 자기 정체성의 한 부분이 된다. 우리는 그 일을 잘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쉽게 그 일을 포기하지 않게 된다. 그 일을 그만둔다는 건, 자기 정체성을 버리는 게 되기 때문이다. 일이 곧 나인데, 어찌 그 일을 함부로 하겠는가?


반대로 권력자들이 베스트로 규정한 특정 유형을 닮으라고 강요받는다면, 직원들은 어떻게 될까? 그 유형에 맞는 소수의 직원들만 직장에서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가 있다. 그들만이 소속감과 자기 정체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나머지 직원들은 고유의 정체성을 포기하라는 강요 속에서 소속감을 잃게 될 것이다. 이제 그들에게 직장은 먹고사는 생존의 수단으로 전락한다. 직장에서 일을 통해 삶을 더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회사가 베스트로 정한 특정 유형의 인간에게만 허락된 특권이 되고 만다. 


물론 그 특권에서 소외된 직원들도 인간이고자 하는 노력을 멈추지는 않는다. 다만 그들은 인간으로서 존재할 공간을 직장 밖에서 찾는다. 직장 밖에서 독립된 자기 정체성을 확보하려고 하고, 직장 밖에서 자신의 고유함을 인정하는 무리를 찾고자 한다. 대신 직장에서는 적당히 일한다.


이를 통해 비축한 시간과 에너지는 자신의 고유함을 확인할 수 있는 다른 활동에 투입한다. 부업을 하기도 하고, 여행을 가기도 한다. 창조적인 취미 활동에 몰두하기도 한다. 때로는 재테크에 올인하기도 한다. 더 많은 돈을 자기 정체성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는 이들은 더욱더 그렇다.


이 같은 현실은 조직 입장에서는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직원들이 가진 에너지와 역량, 재능 중 일부만이 조직 안에서 활용되고 있다는 걸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직의 권력자들은 이 같은 사실을 잘 모른다. 상명하복의 조직에서 ‘개인의 고유함’은 활용돼 본 적이 없는 자원이기 때문이다.


그 자원이 쓰이는 상황을 권력자들은 눈으로 본 적도, 머릿속에서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그러니 어떻게 인적 자원이 사장되고 있는 현실을 깨달을 수 있겠는가. 경영자가 직원을 진정 인간으로 대우하고 싶다면, 마땅히 직원 각자의 고유함을 경영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직원 각자가 자기의 고유함으로 조직의 성과에 기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래야 직원은 직장 안에서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있다. 모범 직원 유형에 맞춰 사람을 획일화하려는 시도는 그만둬야 한다.


물론 직원들의 고유함이 중구난방으로 표출되어서는 곤란하다. 개인의 정체성을 살리자고 조직의 정체성을 깰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경영자는 개인의 고유함이 표출되는 가이드라인과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미션과 문화가 바로 그 역할을 한다. 조직의 미션과 모순되는 방식으로 자신의 고유함을 발휘하려는 직원이 있다면 내보내야 한다.


모바일 콘텐츠로 독자들에게 인사이트를 주는 걸 미션으로 삼는 조직에서 종이 콘텐츠를 고집하는 직원이 있다면 내보내야 한다. 프로토타입 제품을 만들어 재빨리 출시하고 소비자들과 소통하며 제품을 개선하는 게 문화인 기업에서 처음부터 완벽한 제품을 만들려고 하는 직원이 있다면 그 역시 조직을 떠나야 한다. 그게 조직과 직원 모두에게 윈윈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기업들에 미션은 장식에 불과하다. 다수 기업에서는 직원 대다수가 조직의 미션이 뭔지도 모른다. 오로지 단기 이익, 즉 돈이 나침반인 기업이 너무 많다. 그 단기 이익에 집중한 나머지 개인의 고유함은 죽이고 일사불란한 획일화를 강요하고 만다.


이런 상황에서 직원들은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이 훼손되는 걸 느끼고, 결국 조직에 대한 소속감마저 잃게 된다. 한국 직장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직원을 인간으로 존재하도록 지원하는 경영의 혁신이 시급하다.

[김인수 기자의 사람이니까 경영이다]직장에서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소속감과 자기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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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수 기자의 사람이니까 경영이다]직장에서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소속감과 자기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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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6일 오후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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