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변덕에는 겸손하면서 사람의 변덕은 왜 못 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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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현상에 대고 고래고래 악쓰며 화내는 사람을 본 적 있는가. 우리는 왜 자연 현상에는 겸손하면서도 인간 관계에서는 쉽게 대립하고 힘들어 하는 걸까?
바다는 아침부터 화를 내고 있다. 바람이 강하지 않은 데도 웬일인지 파고는 집채만 하다. 거대한 이빨 같은 파도가 해안으로 진격해 와서 굉음과 함께 부서진다. 아침 바닷가에 산책 나온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면서 환호작약이다.
자지러지는 웃음 소리나 바닷새처럼 날카로운 감탄사를 내뿜는다. 사납기만 한 바다의 파도에 대해 당신은 유감스러워 한 적이 없다. 이상한 일이다. 엄청난 자연 재해 앞에서 분노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히려 이런 사태가 일어날 때마다 모든 매스컴은 오히려 인간의 오만을 질타한다. 일종의 회광반조(廻光返照). 문제의 초점을 자신에게 돌리는 순리의 지혜를 드러낸다.
그런데, 또 이상한 일이다. 당신은 당신한테 눈총이라도 한 번 쏜 사람을 잘 잊지 못한다. 며칠이 지나도 불쾌한 감정이 씻기지 않는다. 그런 감정을 씻고 싶어서 술을 마시거나 산에 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오히려 그 인연으로 인한 기억들이 소환되면서 몸과 마음이 부정적 감정에 급속히 오염된다. 자신에게 폭풍우가 몰아친 것도 아니고 지진으로 집이 무너진 것도 아닌데, 누군가와의 짧은 갈등으로 인한 증오나 두려움•분노•좌절감은 당신의 시공간을 무너뜨린다.
자연 재해는 불가항력이고 사람과의 관계는 ‘가능항력’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당신의 마음을 부정적 감정에 빠뜨린 그 사람의 말투나 태도는, 당신이 작정하면 당장이라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의 근거는 당신의 내면 깊은 곳에 감춰져 있을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 평생 해결하기 어려웠던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본 적이 있을 터이다. 이를테면, 마음 한 번 굳게 먹은 덕분에 25년간 해 왔던 술•담배를 스스로 끊었던 경험이 있다고 하자. 당신의 그런 경험은 부지불식간에 타인에게 투영되곤 한다.
타인 또한 ‘바로 나처럼’ 바뀔 수 있다는 신념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그 신념의 첫 번째 대상은 주로 가족과 같은 애착의 대상이다. 당신의 무의식에 그런 신념이 들어 있는 한, 길가에 무심코 담배 꽁초를 버리고 가는 사람을 용서하기 어렵게 된다.
어쩌면 인간이 자연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의 근원에는, 이같은 자기 변신의 경험이 자리잡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나를 화나게 하거나 슬프게 하는 ’저 사람도 마음 한 번 바꾼다면 나한테 잘해 줄 수 있는 거 아냐?‘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당신이 깜박 잊고 있는 것이 있다. 즉, 상대방도 자연의 조건을 바탕으로 생성된 생명체라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산소•질소•이산화탄소•칼륨•산화질소 등으로 이루어진 천혜의 자연에서 유영하고 있는 하나의 작은 생명체일 뿐이다.
지구촌의 뉴스 화면을 채우는 거대한 기상변화•홍수•산사태•해일 등 자연 현상 앞에서는 군말 없이 작아지는 당신은, 정작 타인이라는 조그만 자연 앞에서는 어떡하든 당당하게 자존을 지키고 싶어 한다. 이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타인은 당신의 자연스러운 품성을 훼손하는 일을 저지르곤 한다. 지혜가 필요한 일이다. 이때는 노자(老子)의 무위자연 즉, ‘일체의 인위적인 행위를 가하지 않고 스스로 그러하도록 두는 정신’을 되살려 보자.
타인이라는 자연과 나라는 자연의 ‘스스로 그러함’을 수용하는 태도는 ‘자연재해’를 대하는 인류의 태도와 서로 아귀가 잘 맞아 보이지 않는가. 명상은 타인의 태도를 자연 현상으로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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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2일 오전 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