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일할 때는 제 주변에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성장에 목말라 했었습니다. 막 입사한 개발자들은 어떻게 하면 빨리 신입 딱지를 땔 수 있을지 물어봤었고, 주니어 개발자들은 어떻게 하면 빨리 시니어가 될 수 있는지 궁금해했습니다. 동기들은 다 진급하는데 본인만 누락될까봐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주로 이러한 갈증을 해소시켜주는 멘토링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갖고 저는 캐나다에 와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문화 충격을 받는데요. 현재 자신이 맡고있는 역할에 충분히 만족하며 딱히 더 성장할 마음이 없는 직장인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엔지니어들과 얘기를 해보면 소프트웨어 개발 직군이 다른 직군 대비 처우가 얼마나 좋은지 잘 인지하고 있으며 그래서 더 이상 바랄 게 없다고 합니다. 진급과 함께 늘어난 권한만큼 무거운 책임도 부담스럽다고 하고요.
한국에서 어렸을 때 부터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온 저는 처음에 이러한 캐나다 동료들이 나태하고 한심하다고 느껴졌습니다. 아마도 예전에 교양 수업에서 들었던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되는 복지 선진국의 폐해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엔지니어들을 직접 멘토링하게 되면서 제 관점이 조금씩 바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러한 멘티들의 성장을 독려하는 것이 저의 임무라고 생각했습니다. 업무에서 사용하고 있는 기술에 대해서 좀 더 깊이 공부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여러 책과 온라인 강의를 추천해주었습니다. 이 친구들이 조직에서 더 두각을 내고 진급을 하려면 어떤 부분에서 더 실력을 키워야 하는지 얘기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성장하는 방법을 알려주면 고마워할 줄 알았죠.
하지만 저의 이러한 멘토링 방향에 반발하는 멘티를 만났고, 이 친구와 우리는 왜 성장해야 하는가 대해서 수 차례 깊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태어나서 한 번도 의심해보지 않았던 성장이라는 가치에 대해서 자문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성장에 집착하는 거지? 왜 다른 사람에게 성장을 강요하려는 거지?? 생각을 해보니 반드시 모든 사람이 성장하고 싶어야 할 이유도 없더군요! 제 생각이 얼마나 편협했었는지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새로운 멘티가 생기면 성장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먼저 꼭 물어봅니다. 엔지니어로서 성장을 원치 않는 친구들은 보통 인생의 다른 부분에 열정을 갖고 있더라고요. 어떤 친구는 퇴근 후에 아마추어 하키팀 코치로 투잡을 뛰고, 다른 친구는 영화 감독이 꿈이라서 주말마다 독립 영화를 찍고 있다고 하네요. 이런 친구들은 성장보다는 효율에 초점을 두어 멘토링을 합니다.
저처럼 소프트웨어 개발을 천직으로 삼고 계속해서 공부하며 엔지니어로 성장하고 싶은 사람도 있지만, 그냥 소프트웨어 개발을 괜찮은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고 직업 그 이상 이하로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많습니다. 멘토가 멘티의 성장을 도와줄 수는 있지만, 절대 강요할 수는 없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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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24일 오후 11:03
전혀 생각하지 못했네요. 좋은 경험과 글에 깨달음을 얻어갑니다!
조직 기여도 만큼 조직에서 발생하는 이익에 욕심을 낸다면, 기여가 작은 사람도 필요한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맞는 말씀이네요. 공감합니다!
저도 적당한 직업 정도로 생각하고 퇴근후의 여가나 가족과의 시간을 중시하는데 한국에선 그게 힘드네요.ㅜ
네. 자기 할일만 잘할 정도로 하고, 욕심 부리지 않으면 괜찮지요. 그런데 자기 일도 잘 못하면서 더 좋은 대우를 바라면서 성장도, 일도 조금 하려는 사람만 안 만나면 좋겠어요.
어쩌면 과도한 경쟁 사회가 불필요한 성장 강요를 만드는게 아닌가 조심스레 추측합니다. 이 세상에는 자기만의 속도에 맞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빠르게 성장하지 않거나 자기들과 똑같이 살아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태하거나 게으른 사람으로 보여지는 분위기가 팽배한 거 같습니다.
저는 성장에 목말라서 다른 직군에서 넘어온 주니어라^^… 그럴 수도 있구나 생각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