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과 조율의 커뮤니케이션, 건축과 디자인》

일을 하면서 "이 사람은 참 체계적이고 구조를 잘 만든다"라고 생각했던 동료 중 다수는 건축을 전공했습니다. 건축이라는 것이 여러 측면으로 설계에 대해 고민하기 때문일까요? 저는 건축과 UX(사용자 경험)을 디자인하는 것이 퍽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일상의 공간, 위로의 도시>를 주제로 진행한 OPEN HOUSE SEOUL 2024에서 조명한 김정임 건축가의 이야기 속에서 사용자 경험을 만드는 저와 같은 사람들이 되새길 만한 문장들을 골라 소개합니다.


[ 큐레이터의 문장 🎒 ]


1️⃣ 올해 주제는 <일상의 공간, 위로의 도시>입니다. 집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들, 일하는 사무실이나 학교, 그리고 일상에서 만나는 도시 공간을 주목하려 하는데요. 김정임 소장님께서도 사무실, 학교, 사옥 등 프로젝트를 설계해 오시면서 일상의 공간에 대해 많이 고민하셨을 듯해요.


제가 지금 누리는 것 중에 스스로 한 것이 얼마나 되겠어요. 교육열 높은 부모님 덕분에 좋은 교육을 받아 잘 성장했고 주변에 좋은 분들을 만나면서 그 덕분에 살아온 거예요. 단지 운이 나빠서 그걸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고요.


그래서 공공 프로젝트를 할 때 가장 좋았던 것 같아요.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누릴 수 있는 경험의 폭을 더 확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때 건축가도 중요하지만, 의사결정자도 중요해요. 어느 시대든 권력 집단은 늘 있으니까요. 우리는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지 항상 머릿속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의사결정자에 따라 건축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는 거죠.


우리가 일상의 건축이라고 할 때, 그 일상은 다수(majority)가 가진 일상이에요. 그걸 모두 똑같이 적용하는 건 불가능해도, 되도록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쪽으로 이바지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일상이라는 말 안에서도 차이가 큰 일상들이죠.


2️⃣ 사무실, 학교, 공공시설들과 같은 일상의 건축은 오히려 방치되기 쉽고 기능만 따지기 쉬운 것 같습니다. 소장님이 하셨던 프로젝트를 보면, 일상을 좀 더 풍요롭게 하기 위한 노력이 보여요. 일상에서 차별화를 가져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에 대해 질문하게 됩니다.


서울스퀘어를 할 때도 그런 부분을 고민해서 ‘말하는 건축’, ‘반응하는 건축’을 생각했어요. 건축이 사람들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서울스퀘어를 대수선할 때도 기존 대우빌딩이 갖고 있는 일방향적이고 권위적인 느낌을 바꾸고 싶었어요. 쌍방향적이고 부드러운 느낌으로, 남성적이라면 여성적으로, 내 얘기를 들어줄 것 같은 분위기로 바꾸고 싶었어요. 건축이 갖고 있는 태도나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을 걸 것인가에 대해 많이 고민했어요. 사실 건축에는 "너는 여기 들어오지 못한다"와 같은 보이지 않는 경계들이 있어요.


삼성전자 프로젝트에서도 보안 시설이었지만 모든 경계가 면이나 선에서 이루어지지 않도록 하고 싶었어요. 입구 게이트(Security Point)가 있을 때 시각적, 청각적, 신체적으로 경계가 입체적으로 겹치면(Overlap)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몸은 여기까지지만 시각적으로 더 멀리 볼 수 있고, 멀리 볼 수 없지만 소리가 들리는 공간을 시도해 봤어요. 그래서 외부 블라인드 재료인 PVC(Polyvinyl Chloride)를 사용해 갤러리 같은 공간을 만들었어요. 타공이 있는 부드러운 모기장 같은 재질로 소리는 들리게 했어요. 세미나도 할 수 있고, 문을 달아서 태그(Tag)해야 들어갈 수 있지만, 반투명하게 보이고 소리도 들리게 했어요.


3️⃣ 사물을 오브제(Object)로 보지 않고 교감하고 소통하는 대상으로 보시는 거군요.


맞아요. 우리는 시각화(Visualize)된 사람들이잖아요. 사실 물리학책을 읽다 보면, 머릿속으로 그 이론의 이미지를 상상하곤 해요. 최근에 비타민(Vitamin) 광고 중에 사람 모양을 만들어진 빨갛고 노란 입자(Particle)가 걸어 다니는 광고를 봤어요. 저는 그게 인간을 가장 잘 설명하는 것 같아요. 그 입자들 사이에 경계가 있겠나 싶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사물을 볼 때 경계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어디든지 다 통해서 다니는 거죠. 우리가 사람과 손을 잡을 때도 분명히 오가는 것들이 있을 거예요. 실제로 초미세먼지가 몸을 침투하기도 하고요. 그렇게 생각하면 세상을 보는 게 재미있어요. 너와 나도 경계가 없는 거죠. 어떻게 보면, 물질은 조밀했다가 성글었다가 다시 조밀해지는 것일 뿐, 결국 모든 것이 다 통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가끔 그런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 보면, 어쩌면 생물과 무생물 사이에도 경계가 없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읽었던 과학책 중 하나에 멋진 문구가 있었는데, 결국 제 몸은 원자(Atom)와 분자(Molecule)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고, 이들이 한 번도 이런 모양으로 모여 있었던 적은 없다는 거예요. 죽음은 해체되었다가 다시 누군가에게로 가서 다른 형태로 모이는 것이고, 이 모양으로 모였던 것은 처음이라는 거죠. 모였다가 해체되었다를 반복할 뿐이고요.


https://www.ohseoul.org/2024/programs/%ea%b1%b4%ec%b6%95-%ed%8f%ac%ec%9a%a9%ea%b3%bc-%ec%a1%b0%ec%9c%a8%ec%9d%98-%ec%bb%a4%eb%ae%a4%eb%8b%88%ec%bc%80%ec%9d%b4%ec%85%98/event/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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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3일 오전 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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