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성 위에 쌓는 목표라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01 . 벌써 새해가 된지도 보름 가까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새해엔 이런 걸 해봐야지!'라고 마음먹었던 분들 중에서 그 목표를 알차게 실천하고 있으신 분도 계실 테고, '우리의 새해는 구정부터니까!'라는 마음으로 약 4주 정도의 유예기간을 갖고 계실 분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꽤 많은 분들께서는 '하고 싶은 것도 있고, 해야 한다는 것도 알지만 왜 이렇게 몸도 마음도 움직여주지 않지...?'라는 생각을 하고 계실 수 있죠. 사람 사는 모습들이 별반 다르지 않으니까요.


02 . 제 경우에는 새해 목표를 세우는 (특별하지는 않지만 나름 괜찮게 써먹고 있는) 저만의 방식이 하나 있긴 합니다. 그건 바로 '관성을 걷어내는 작업'이죠. 연말 시즌이 주는 그 따뜻하고도 아쉬운 분위기, 더불어 새해가 되면 만연해지는 희망과 의욕의 메시지들에 취해 늘 새로운 것을 해보고자 다짐하지만 너무도 쉽게 그 목표들이 휘발되는 걸 보면 무엇이 우리의 의지를 꺾는 걸까 궁금해지기도 하더라고요. 무엇보다 우리의 나약함에서만 잘못을 찾기엔 살짝 억울한 면도 있고요.


03 . 그런 고민의 과정에서 도달하게 된 지점이 바로 '관성'이라는 대상이었습니다. 다들 잘 아시겠지만 관성은 '현재의 운동 상태를 유지하려는 경향'을 의미합니다. 놀랍게도 관성의 영어 단어인 Inertia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까지 올라가게 되는데요, 그때도 이 단어의 뜻은 '쉬다', '게으르다'의 의미였다고 하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죠. 훗날 관성이라는 물리적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서 차용한 어원 중 하나가 게으르다였고, 그게 오늘날 어느 문화권에서든 또 다른 의미의 관성으로 불리고 있다는 사실에서 언어의 신비로움을 발견하게 되는 것도 같습니다.


04 . 하지만 우리가 관성의 개념을 다룰 때 자주 잊어버리는 전제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물체에 작용하는 힘의 총합이 0일 때'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관성이라는 그 경향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내외부에서 영향을 주는 힘이 0이어야 한다는 의미인데, 어쩌면 우리는 이 중요한 조건을 잊은 채 그저 관성이란 게 내 자신이 천성적으로 게으른 탓이라는 이유로 돌리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죠. (그게 그 말 아니냐는 분도 계시겠지만, 적어도 이 개념을 이해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차이는 크다고 생각합니다)


05 . 그럼 우리는 왜 관성인 줄 알면서도 굳이 힘의 상태를 계속 0으로 두고 있는 걸까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크게 다섯 가지로 한 번 분류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는 아직까지 아무도 내게 뭐라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관성에 머물고 있을 확률이 크고, 둘째는 여태껏 해왔던 게 아까워서 관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세 번째로는 뭔가 바꾸려고 했다가 오히려 더 나빠질까 봐 현장 유지만이라도 하고자 하는 심리에서도 비롯될 수 있다고 보고, 네 번째는 아무 것도 안 하는 것보다야 관성이라도 유지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하던 방식 그대로를 계속 고수할 수도 있을 겁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 중에서도 뜨끔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을 테고요.


06 . 하지만 저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마지막 다섯 번째라고 생각합니다. 다름 아닌 '관성이 관성인지 몰라서' 관성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죠. 즉 내가 하고 있는 노력, 나에게 붙어 있는 습관, 내가 쓰고 있는 방법들 중에 어떤 것들이 떨쳐내야 할 관성이고 어떤 것들이 진짜 성장을 위한 동력인지 구분하지를 못하는 겁니다. 때문에 이 모든 짐을 안고서 새롭게 뭔가를 시작하려고 하니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을 수밖에요. 가벼운 상태로 시작해도 쉽지 않을 일을 그동안 내가 쌓아온 수많은 레거시를 안은 채로, 그마저도 무엇이 도움이 되고 되지 않는지를 모르는 채로 뭔가를 새로 시작한다는 것은 어쩌면 어불성설인지도 모릅니다.


07 . 그럼 관성을 관성이라고 자각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저는 이 방법 역시 제 나름의 기준을 적용해 다섯 가지로 한 번 구분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는 관심과 노력 대비 오랜 기간 동안 성과로 돌아오지 않는 것들은 관성에 해당할 확률이 높습니다. 두 번째로 누군가 나와는 다른 방법으로 좋은 퍼포먼스를 내고 있다면 지금 내가 쓰고 있는 방식이 관성은 아닐지 체크하는 자세도 필요하죠. 세 번째, 욕먹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딱히 칭찬을 받는 것도 아닌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들 역시 관성으로 굳어 있을 수 있고, 네 번째로 실제 행동으로 옮겨보지도 못하고 매번 고민만 하다가 끝나는 것들 역시 힘의 작용이 0인 상황 속에 놓여 있는 것들이라 보는 게 맞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 '왜 해야 하는가'에 쉽게 답할 수 없는 것도 관성적으로 뭔가를 하고 있다는 반증에 해당할 겁니다.


08 . 이렇게 나열하고 보면 내가 하고 있는 일, 내가 실천하고 있는 루틴 중에 관성에 빠져있는 것들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나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뿐 아니라 내가 새로운 뭔가를 시도하려고 할 때 은근 내 발목을 잡는 존재가 될 확률도 높죠.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아예 안 하는 것보다야 뭐라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의 목표는 새해에, 새롭게, 더 나은 뭔가를 하는 것인 만큼 나에게 무엇이 관성인지를 확인하는 과정은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할 필수 절차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09 .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관성은 '어떤 대상에 작용하는 힘의 총합이 0일 때, 현재의 운동 상태를 유지하려는 경향'을 말합니다. 그러니 만약 우리가 스스로에게 1도 힘을 주지 못할 목표를 만든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지를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합니다. 어차피 내 관성을 깨지 못할 거라면, 어차피 올해도 작년과 크게 다를 바 없이 살 거라면 아무리 좋은 목표라고 해도 우리에게 작용하는 힘의 상태는 0일 테니 말입니다. 그러니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목표 중 하나는 우리의 관성을 깨뜨릴 수 있는 목표일지도 모르죠. 그러기 위해서 관성을 관성으로 자각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고요.


10 . 너무 냉정하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사실 새해라고 해서 달라지는 것들은 크게 없습니다. 그저 숫자 몇 개 바뀔 뿐 우리의 역량과 생체리듬은 12월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죠. 하지만 사람에겐 그냥 막무가내로 부딪혀봐야 하는 노력이 있나 하면 적어도 개념을 구분 짓고 정확히 접근해야 하는 노력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 (적어도 구정까지는...) 올해 내가 털어내고 싶은 관성은 무엇인지 한 번 정리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새로운 나와 만나기 위해서는 결국 어제의 나와 이별해야 하는 것일 테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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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 12일 오후 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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