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대한민국은 만만하니까 호구 잡기 딱 좋아서 저러는 걸까?

A. 아니다.

Q. 트럼프가 제정신이 아니어서 저럴까?

A. 역시 아니다.


구조적인 문제가 똬리를 틀고 있다. 미국은 절실한 문제가 있다. 늘 머리에 이고 사는 골치 아픈 문제다. 세계를 호령하는 패권국가인데도 반세기 넘게 해결하지 못했다. 오히려 더 심각해진다. 왜냐하면 패권국가의 운명이 저절로 만드는 문제여서다. 더 화나는 건, 다른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선 ①쌍둥이 적자다. 무역 경상수지 적자와 정부 재정적자. 식상한 느낌이 있지만, 하여튼 그들에겐 중요하다. 또 있다. ②제조업 붕괴. 백인 블루칼라 중산층의 붕괴와 러스트 벨트의 분노. 그런 이야기다. 마지막으로 중국. 일자리를 뺏어간 ③중국에 대한 혐오와 분노. 트럼프 시대를 탄생시킨 중요한 이유들이다.


그러나 이것도 증상일 뿐이다. 병리적 증상의 시작점,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집권 세력의 경제 가이드북, 이른바 마이런 보고서 Miran Report를 보면 세계 경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


1960년, 미국은 혼자서 세계 경제의 40%를 차지했다. 2012년에는 21%가 되었다. (지금은 26%로 조금 반등했지만) 추세는 분명하다. 세계 경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


이게 쌍둥이 적자가 점점 심화하는 이유다. 러스트 벨트가 스윙스테이트가 되어 분노한 사람들이 포퓰리스트 리더를 뽑는 이유다. 조금 더 과감하게 점프해 보면, ‘미국의 경제 패권이, 나아가 미국 시대가 저물고 있어서’ 트럼프가 저런다.


마이런 보고서를 자세히 보자. 보고서는 쌍둥이 적자의 이유를 ‘미국인이 흥청망청 소비해서라거나, 미국 정부가 돈을 너무 많이 찍어내서’라고 하지 않는다. 대신 '미국이 짊어진 십자가 때문'이라고 한다. 십자가는 달러, 즉 기축통화다. 주객이 전도된 궤변 같지만 일단 귀 기울여보자.


“원래 경제는 균형으로 회귀하는 게 정상이야. 국제경제도 그래. 수입을 많이 해서 적자가 깊어지면, 통화가치가 떨어져. 그럼, 수입품값이 비싸지고 소비가 줄지. 반대로 수출품의 가격은 싸지니까 수출은 잘되고. 그러면 적자가 점점 줄고 균형으로 가거나 흑자로 반전되지.“


“그게 국제경제에서 일어나는 환율의 자율 조정 기제야. 교과서에선 그래. 그런데 미국에선 안 그래. 왜냐고? 기축통화라서. 너희들이 내 돈이 좋다며 외환보유고로 쌓으려 하잖아. 그러니 아무리 적자가 지속되어도 강달러는 사라지지 않아.”


“미국의 적자는 수입을 많이 해서 벌어진 일이 아니야. 세계 경제 전체의 성장과 각국의 외환보유를 위해 달러를 해외에 줘야 해서 수입을 해야 하는 처지 때문이야. 우리의 죄 때문이 아니고, 너희를 보우하기 위해 우리가 십자가에 매달린 거야.”


이게 기축통화국의 어려움이다. 세계 경제는 기축통화가 필요하다. 따라서 달러는 계속 공급되어야 한다. 멈출 수 없다. 마이런 보고서에 따르면, 이 과정은 미국의 적자가 지속되어야만 가능하다. 해법도 없다.


이 적자는 해소될 수 없기에, 패권이 지속되는 한 계속되는 악몽이다. 그런데 이렇게 적자가 쌓이면, 미국 경제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다. 달러에 대한 신뢰도. 그러다 어느 순간 세상이 ‘저 나라 빚이 너무 많아 못 믿겠어‘ 하는 결정적 순간이 오면?


강달러는 사라진다. 그리고 몰락이다. 미국은 패권을 잃는다. 그냥 패권만 잃는 게 아니다. 천문학적인 빚 부담이 한 순간에 다가온다. 국가 몰락이 될 수 있다. 그들은 이 사태가 너무 두렵다. 패권의 무게는 그런 것이다.


세계가 필요로 하는 기축통화의 양은 세계 경제의 규모가 커질수록 점점 많아진다. 직관적인 얘기다. 이 돈의 규모는 기축통화국의 덩치가 크면 부담스럽지 않다. 이를테면 미국 경제 규모가 세계 경제의 절반이라면 부담이 없다.


그런데 한 1/4 정도밖에 안 된다고 생각하면, 부담스럽다. 만약 1/5, 1/6으로 쪼그라드는 상황이 올 것으로 예상 된다면? 악몽이 다가온다고 여기게 될 것이다. 실제로 강달러는 미국경제에 점점 더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우리는 위기 때마다 강달러여서 ‘부럽다’고 하지만, 미국 제조업의 차원에서 보면, 위기 때마다 미국제품은 비싸지고 있다. 그러니 쌍둥이 적자 문제는 (식상한 표현이고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지만) 공포스러울 정도로 점점 심각해진다.


요약하면, 미국의 (상대적) 덩치는 점점 작아지고 있고, 그만큼 미국의 부담은 점점 커지고 있다. 패권국가의 힘이 줄어들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정치적 내전 상태가 벌어진다. 미국은 쪼개졌다. 분노와 냉소가 분열을 촉발했다. 이를테면 이런 불만이 화약이 되었다.


“2000년에 자격이 안 되는 중국을 WTO 가입시켰어. 너희 엘리트들의 손으로. 그리고 미국의 제조업을 중국에 다 퍼 줬지. 일자리를 줘버린 거야. 엘리트들은 ‘돈 안 되는 건 중국에 주고 우리는 돈 되는 일만 하자’고 하면서 그게 세계화라는군.


그래서 미국이 부유해졌다고? 그게 나와 내 친구와 우리 마을에 무슨 의미가 있지? 공장은 없어졌고, 우리는 실업자야. 평균은 의미가 없어. 우리는 모든 것을 뺏겼는데, 너희 엘리트들은 나한테 더 노력하라고 하네. 썩을. 엘리트들은 쓰레기야.”


실리콘밸리와 월가는 부유해졌으나, 러스트 벨트에는 일자리 자체가 없다. 트럼프는 이런 논리에 부응하면서, 세상에 대한 불만을 ‘부패한 엘리트, 비효율적인 딥스테이트 정부, 그리고 슬리피 조’ 탓으로 몰고 두 번째 집권에 성공했다.


분배에 실패한 자본주의는 공동체를 화해할 수 없는 집단들로 쪼개버렸다. 민주주의는 이 쪼개져 적대하는 집단 사이의 전투가 되었다. 분노하는 사람들의 힘은 점점 커졌고, 트럼프가 당선되었다. 결국 미국의 국력이 쇠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지금 벌어지는 이야기는 이런 배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궤변 같을지라도, 나름의 합리성이 보일 것이다. 그들에겐 지금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나름의 절박성도 있다. ‘트럼프가 제정신이 아니라거나, 동맹을 버리는 것은 어리석다’고만 말하면 그들의 이런 고민을 볼 수 없게 된다.

패권이 저물고 있다, 그래서 트럼프가 저런다

KBS 뉴스

패권이 저물고 있다, 그래서 트럼프가 저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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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13일 오후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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