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요. 제 말은 왜 사람들을 그렇게 두 그룹으로 나누느냐고요.”


신입사원 A의 부서는 종종 전체 팀원 10명이 모여 아이디어 회의를 한다고 한다. 회의에서 여러 사람이 의견을 내지만, 부장이 말을 귀 기울여 주는 직원은 정해져 있더란다. 10명 중 4명이라고 했다. 다른 팀원들은 의견을 내도 듣지를 않더란다.


“그 4명 말고 다른 사람들의 얘기는 들을 가치 조차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도대체 왜 그러는 거죠? 나머지 6명 팀원의 아이디어는 처음부터 존재가치가 없는 건가요?”


나는 A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해 주었다. “너네 부장은 팀원을 두 그룹으로 나눈 거야. 하나는 인그룹(ingroup), 다른 하나는 아웃그룹(outgorup). 전자는 부장이 보기에 쓸만한 아이디어를 내는 그룹이고 후자는 그렇지 않은 거지. 물론 실제와는 다를 수 있어. 부장의 주관적 판단이니까.”


나는 잠시 뜸을 들였다.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라는 말이 떠올랐다. 인간은 인지적 자원을 쓰는데 매우 인색하다는 뜻인데, 쉽게 말하면 생각하는데 에너지를 쓰기 싫어한다는 뜻이다. 그 정도가 심해 구두쇠라고 하는 것이다.


부장이 딱 그 경우다. 직원들 각각의 아이디어가 얼마나 가치 있는지, 쓸만한지 생각하는데 에너지를 쓰기 싫은 거다. 매번 그렇게 하려면 부장의 두뇌는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할 것이고, 회의가 끝날 때마다 머리가 ‘띵’할 거다.


그래서 부장은 머리를 덜 쓰는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냈다. 팀원을 인그룹과 아웃그룹으로 분류하고 아웃그룹 직원들의 의견은 흘려 듣는 것이다. 그들의 의견을 검토하는데 두뇌의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 반대로 인그룹 직원들의 얘기는 경청한다. 자신의 인지적 자원을 그들에게만 배분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부장을 무작정 탓할 수는 없다. 부장의 인지적 자원은 무한하지 않다. 당연히 이를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싶을 것이다. 그 결과, 부장의 두뇌는 의식적이든 아니든 상관 없이, 직원을 두 그룹으로 나누고야 마는 것이다.


특히 인그룹 중에서도 인그룹인 직원들, 속된 말로 ‘부장의 사람’이라고 불리우는 직원의 의견은 그냥 믿어준다. 별 검토 없이 그냥 수용한다. 이 역시 그의 인지적 자원을 아끼는 효율적인 방법이다. ‘부장의 사람’이 의견을 낼 때 부장의 두뇌는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속삭인다.


’그의 의견은 대체로 내가 늘 공감했어. 대부분 쓸 만 했어. 그렇다면 굳이 검토하느라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있겠어? 그냥 믿자. 물론 이번에는 그의 의견이 틀릴 수도 있어. 하지만 장기적 관점에 본다면 그냥 수용하는 게 효율적이지‘라고 말이다.


A는 얼굴이 굳어진 채로 되물었다. “그러면, 일단 아웃그룹으로 분류되면 영원히 헤어 나올 수 없겠네요?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내도 부장은 그 말을 듣지 않을 테니까요.” 그에게 솔직히 얘기해 주었다. “그래. 네 말이 맞아. 그럴 가능성이 크지. 원래 인생이 그래. 불공평하지”


사실 부장이 말만 안 들어주는 데에서 끝나면 다행이다. 어떤 부장들은 아웃그룹 직원이 사소한 잘못이라도 저지르면 ‘너는 원래 그런 녀석이었어!’라고 생각한다. 엉뚱한 아이디어라도 내면 ‘역시나!’라며 답답해 한다. 부장의 그런 생각은 아웃그룹 직원을 대할 때 겉으로도 드러난다.


쉽게 짜증을 낸다. 괴롭히고 인격적으로 모독하기까지 한다. 그 결과, 아웃그룹 직원들은 점점 업무의욕을 잃는다.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내려는 노력을 하지 않게 된다. 그러다 보면 결국엔 ‘별 쓸모 없는 아이디어만 내는 사람’이 된다. 부장이 애초에 판단했던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인그룹 직원은 정반대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할 많은 기회를 얻는다. 이를 통해 더 많이 경험하고 성장한다. 그 결과, 앞으로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내놓을 가능성이 커진다. 애초에 부장이 생각했던 ‘쓸 만한 아이디어를 내놓는 사람’이라는 판단이 실현되는 것이다.


A가 되물었다. “그게 옳은 건가요? 부장이 그런 식으로 리더십을 발휘해도 되는 건가요?” 나는 A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면서 말했다. “옳고 그름을 따진다면 그래서는 안 되는 거지.”


1️⃣부장은 아웃그룹 직원들을 망치고 있다. 설사 부장의 분류가 옳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배우고 성장할 기회를 박탈하게 된다. 리더의 역할을 팔로워들의 성장을 돕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그는 ‘리더’의 자격이 없는 것이다.


2️⃣A의 부장은 조직의 혁신을 가로 막고 있다. 인간은 자기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을 좋아한다. 그가 인그룹으로 분류한 직원들은 대체로 부장의 생각과 싱크로율이 높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 부장이 듣기에 엉뚱한 아이디어를 내는 직원들은 아웃 그룹에 포함됐을 확률이 높다. 그러나 혁신적인 생각은 처음에는 엉뚱하고 미친 소리처럼 들리기 마련이다.


부장은 자신의 생각과 싱크로율이 낮은 직원들을 아웃그룹으로 분류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흘려 들음으로써, 부장 본인 스스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창조적 의견들을 무시하게 된다.


3️⃣인그룹의 직원들 역시 불행할 가능성이 있다. 부장은 중요한 일은 인그룹 직원들에게 맡긴다. 당연히 그들에게 일이 쏠리고 과중한 업무 부담에 시달리게 된다. 부장이 젊었을 땐 이런 게 문제되지 않았다. 회사에 모든 것을 바치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요즘은 다르다. 개인 삶과 회사 생활의 조화를 추구한다. 인그룹 직원들 중 일부는 그 부장 밑에서 일하는 게 불행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B급 직원이 됨으로써 부장의 인그룹에서 벗어나려고 할 것이다.


사실 많은 보스들이 이런 부작용을 모르는 게 아니다.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자기 눈에 일 못하는 직원으로 보이는 직원까지 애정을 갖고 챙길 여유가 없다고 한다. 당장 성과를 내려면 믿을 수 있는 에이스 몇명을 ‘빡세게’ 굴리는 게 최선이라고 한다.


보스들의 이런 얘기를 들을 때면, 그리고 그들 밑에서 성장의 기회를 놓치고 있는 직원들의 하소연을 들을 때면, 이 표현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직장인은 직위의 높고 낮음을 떠나 모두 ‘미생(未生)‘이다.”

[김인수 기자의 사람이니까 경영이다] 부장이 직원을 인그룹과 아웃그룹으로 나누는 까닭은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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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수 기자의 사람이니까 경영이다] 부장이 직원을 인그룹과 아웃그룹으로 나누는 까닭은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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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14일 오후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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