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수 기자의 사람이니까 경영이다]자리가 무능한 사람을 만든다는데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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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지하철에서 중년 사내와 20대 후반의 한 젊은이가 필자의 앞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법이지.” 중년 사내가 젊은이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가 내 귀에 들려왔다. 그 순간 나는 묘한 추억에 빠져들었다.
대학생 때부터 흔하게 들은 말이었다. 자리를 맡으면 그 자리에 맞는 사람이 된다고 했다. 임원으로 승진하면 임원에 걸맞게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당장은 자기 능력에 부치는 자리라도 일단 맡으면 그 자리에 맞게 성장한다고 했다. 그러니 조직에 들어가면 중요한 자리를 맡으라고 옛 선배들은 조언했다.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만약 사람들이 하찮다고 여기는 자리를 맡으면 어떻게 될까? 그 자리에 걸맞은 사람이 되는 걸까? 그렇다면 무능해진다는 뜻인가? 그 생각에는 근거가 있었다. 심리학자 앨런 랭어의 책 <마음챙김>의 한 단락이 기억났다.
“우리는 여행하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독립적이고 자신감이 있으리라는 가정 아래 공항에서 실험을 하기로 했다. 실험 중 하나는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 1단계에서 우리는 피험자들에게 난이도가 낮은 산수 문제들을 풀게 했다.“
”2단계에서는 어떤 피험자들에게는 ‘조수’라는 칭호를, 다른 피험자들에게는 ‘감독자’라는 칭호를 주어 자신의 능력에 의문을 품도록 유도한 뒤 각자 자신의 역할에 맞게 과제를 수행하도록 지시했다.“
”3단계에서는, 모든 피험자가 1단계에서 풀었던 것과 같은 수준의 쉬운 산수 문제를 다시 풀었다. 그런데 ‘조수’가 되었던 피험자들은 1단계에서 받았던 점수의 절반밖에 받지 못했다. 실험을 시작할 땐 똑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꼬리표를 받아들이자 수행능력이 저하된 것이다.“
필자는 이 실험 결과를 접하고 깜짝 놀랐다. ‘조수’라는 자리가 사람을 무능하게 만든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과제 수행을 주도하는 감독자가 아니라 옆에서 보조하는 조수 역할을 맡았더니, 산수 문제를 푸는 능력이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는 게 그 증거 같았다.
그러고 보니,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게 맞는 거 같았다. 단 사람을 무능하게 만드는 거였다. 물론 그렇게 되려면 한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남들이 그 자리에 붙인 ‘꼬리표’, 즉 ‘하찮은 자리’라는 걸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는 것, 그래서 그 자리를 맡은 자신의 능력을 의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 실험 결과는 무서운 진실 하나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세상 사람들이 내가 맡은 자리를 하찮게 여긴다고 나 역시 그렇게 여기면, 결국 나라는 사람 자체가 무능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종종 주변에서 정반대 사람들을 보게 된다. 독립적이고 창조적인 영혼의 소유자 가운데 이른바 ‘한직’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한직은 대체로 남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지 않는다. 일에 쫓기지도 않는다. 시간 여유가 생긴다. 간섭과 관례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하기에 딱 좋다.
반면 ‘중요한 자리’라는 꼬리표가 달린 자리에는 윗사람들의 간섭이 심하다. 대개 윗사람들은 그 중요하다는 자리를 이미 거쳤다. 자기 방식으로 일해야 성과를 낸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 방식을 후임자가 고수하기를 원한다. 후임자 입장에서는 새로운 시도를 하기가 쉽지 않다.
독립적이고 창조적인 영혼의 소유자 입장에서는 괴로운 상황이다. 결국 중요한 건 남들이 그 자리에 붙인 ‘꼬리표’가 아니다. 그 자리가 자석처럼 자신의 ‘열정’을 끌어당기느냐, 업무에 ‘자유’가 있느냐가 핵심이다. 존 고든의 책 <에너지 버스>의 한 구절이 기억난다.
“미국 대통령 린든 존슨이 미 항공우주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에요. 대통령이 로비를 지날 때 지저분해진 바닥을 닦고 있는 청소부를 보게 됐답니다. 청소부는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일이라도 하는 듯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열심히 바닥을 닦고 있더랍니다.“
”대통령은 그에게 다가가 치하했죠. ‘여태껏 자신이 본 중에서 가장 훌륭한 청소부’라고 말이죠. 그런데 그 청소부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아세요? ‘각하, 저는 일개 청소부가 아닙니다. 저는 인간을 달에 보내는 일을 돕고 있어요.’“
그 청소부는 청소일에서 자신의 사명과 열정을 찾은 것이다. 결국 하찮은 자리를 맡아 하찮은 사람이 되느냐는 우리 자신에게 달렸다. 우리는 그 일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가 있다. 우리 자신의 능력을 키울 수 있다.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콧노래를 부르며 행복하게 일할 수 있다.
오히려 높은 자리가 사람을 무능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로렌스 피터가 제시한 피터의 법칙이 딱 그런 내용이다. 이 법칙에 따르면 계층제 조직에서 직원들은 자신이 무능해지는 수준까지 승진하게 된다.
처음에는 능력을 발휘해 승진하지만 결국에는 자기 능력으로는 버거운 자리에 오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무능한 상사가 되고 만다. 피터의 법칙이 옳다면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속담은 틀린 게 된다. 버거운 자리는 그냥 버거운 자리일 뿐이다. 사람만 무능해진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든다. 피터의 법칙이 맞는다면, 무능한 사람들은 어떻게 높은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것일까? 그 비결은 관료제의 속성에 있다. 관료제는 매뉴얼과 규칙, 규정으로 굴러가는 조직이다. 고위직 직원 역시 그 매뉴얼을 지킴으로써 자기 자리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금 앞에 앉은 중년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젊은이에게 직장 생활에 대한 충고를 계속 늘어놓고 있었다. 아무래도 고향 또는 학교 선후배 사이 같았다. 필자는 그 젊은이에게 나이 든 직장인의 말에 귀 기울이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 급변하는 세상이고 미래는 불확실하다. 그러니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그의 얕은 경험담은 무시하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자리는 사람을 무능하게도 유능하게도 만들 수 있다. 중요한 건, 그 자리에서 자기만의 전진이 가능하느냐는 것. 그 전진이 자기 삶에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전진과 의미가 없는 자리라면, 아무리 높은 자리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남들이 하찮게 보는 자리라고 해도 전진과 의미가 있다면 그에게 소중한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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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21일 오전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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