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 데이비슨을 '역사적 브랜드'로 만든 역선택> 1. '할리 데이비슨'이라는 브랜드를 들으면, 대부분 터프한 무법자의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2. 할리 데이비슨은 이러한 남성적인 이미지를 바탕으로 오랫동안 최고의 오토바이 브랜드로서 지위를 누렸다. 하지만 할리 데이비슨이 예전에 심각한 경영 위기를 겪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3. 할리 데이비슨의 위기는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오토바이 시장에는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하고 있었다. 바로, '혼다'라는 일본 브랜드였다. 4. 혼다는 이렇게 외쳤다. "여러분은 이제 혼다를 타는 (도시적이고) 멋진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겁니다" 5. 그리고 혼다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자) 그 뒤로 야마하, 스즈끼, 가와사키 같은 일본 브랜들이 대거 (시장에) 들어왔다. 이러한 추세는 1980년대까지 이어졌고, 할리는 퇴출 위기로까지 몰리고 말았다. 6. 마침내 할리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일본 브랜드들의 가세로 오토바이 시장이 크게 변한 것이다. 7. 그리고 할리는 이 변화를 전혀 따라잡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오토바이를 탄다는 것은 거칠고 모험적인 일이 아니었다. 할리의 으르렁대는 엔진 소리와 공격적인 디자인은 시장에서 점점 매력을 잃어갔으며, 할리가 추구한 남성적인 이미지는 점점 과거의 유물처럼 사라져 가고 있었다. 8. 반면, 일본 브랜드들은 세계 시장을 계속 파고 들어가고 있었고, 할리는 파산 직전에 내몰렸다. 9.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할리는 일반적인 해결 방안을 따르지 않았다. 할리는 일본 브랜드들이 만들어가고 있는 새로운 시장 흐름에 편승하지 않았다. 10. 시장에서는 할리가 하루빨리 디자인을 현대화하고, 브랜드 이미지 또한 부드럽게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리는 이러한 접근 방식을 단호하게 거부했다. 11. 오히려 할리는 기존의 남성적인 이미지를 극단적으로 강화해나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오히려 이들은 1940~50년대 할리가 가졌던 전통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부활시키고자 했다. 12. 이러한 전략을 바탕으로 할리는 할리 오너스 그룹(HOG)라는 라이더 커뮤니티를 조직하고, 다양한 오토바이 경주의 스폰서로 나섰다. 13. 이렇게 할리는 시장의 변화를 따라잡기보다는, 과거의 빛나는 판타지를 부활시키고자 했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점점 잊혀 가고 있던 판타지를 일깨우고자 했다. 14. (대부분의 경우) 어떤 기업이 시장의 흐름을 외면할 때, 특히 소비자 계층의 변화를 무시할 때, 우리는 그들에게 '시대에 뒤떨어진 브랜드'라는 딱지를 붙인다. 15. 그런데 할리는 그런 일을 했다. 할리는 도심에서 굉음을 울리며 질주하는 할리 라이더 그룹을 조직함으로써, 과거의 유산을 더욱 강화해나갔다. 16. 합리적이고 도시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던 시장 상황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17.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리는 회원 수가 백만 명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큰 오토바이 커뮤니티를 만들었고, 할리 로고를 문신으로 새긴 열혈 마니아층을 만들어냈고, 그 기반으로 전 세계 오토바이 라이더들의 영원한 로망으로 다시 자리 잡는 데 성공을 거두었다. 18. (이제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하든 간에 할리 오토바이를 갖고 있다면, 주변의 사람들은 그를 어릴 적 꿈을 잃어버리지 않는 오토바이 라이더로 바라본다. 19. 이러한 점에서 할리는 문화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20. 할리는 (그 어떤 브랜드도 하지 못한) 과거의 정체성을 부활시키고 이를 더욱 강화함으로써 진정한 차별화를 이룩했다. - 문영미, <디퍼런트> 중

2021년 1월 25일 오전 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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