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호 PD의 독자노선이 의미하는 것>
1. (지난) 20년 간 미디어 환경은 계속 변했다.
2. 2010년대 초반에는, tvN 같은 케이블 채널과 새로이 등장한 JTBC 같은 종편 채널이 공격적인 투자를 하기 시작하면서 지상파3사의 스타 PD들이 대거 빠져나갔다. 이명한 PD, 나영석 PD, 신원호 PD가 CJ ENM으로 이적해 tvN 예능과 드라마를 이끌었고, 김시규 PD와 이동희 PD가 JTBC로 이적했다. MBC도 <황금어장>을 기획한 여운혁 PD가 JTBC로 이적해 <아는 형님> 같은 롱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3. 당연히 김태호 PD 역시 러브콜 1순위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변화 속에서도 김태호 PD는 MBC를 떠나지 않았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무한도전>이라는 레전드 예능이었다. 만일 MBC를 나오게 되면 그 간판 프로그램이었던 <무한도전>을 할 수 없다는 점이 김태호 PD를 움직이지 않게 만든 가장 큰 이유다. 그건 <무한도전>의 찐팬들 역시 원하는 바였다. 김태호 PD 없는 <무한도전>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4. 하지만 그렇게 버텨왔던 김태호 PD는 결국 2018년 <무한도전>의 시즌 종영을 선언했다. 그간 쉬지 않고 달려오며 지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그 종영의 한 이유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이미 변화하고 있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무한도전>식의 예능에 어떤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5. 무엇보다 예능을 선제적으로 앞에서 이끌어온 김태호 PD로서는 OTT, 유튜브 같은 새로운 미디어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그 변화 속에서 계속 지상파에 남아 '지상파용 예능'만을 만든다는 사실이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
6. 예를 들어, 스타 예능 PD의 또 다른 양대산맥이라고 할 수 있는 나영석 PD는 CJ ENM으로 이적해 tvN 예능을 주도하면서도 동시에 십오야 같은 유튜브 채널을 통한 '숏폼' 예능들을 계속 만들어 왔다. 하지만 지상파에 발이 묶여 있는 김태호 PD는 사정이 다르다. MBC라는 플랫폼에 걸맞는 예능 프로그램의 기획에만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7. 어쩌면 지상파 예능 시대의 마지막 보루처럼 남아있던 김태호 PD의 이러한 선택은 지금의 달라진 콘텐츠와 플랫폼 환경을 보다 분명하게 드러내는 일처럼 보인다. 즉, 그의 선택이 이제 방송사의 시대는 가고 대신 콘텐츠 스튜디오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걸 상징하는 사건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8. (이제 김태호 PD뿐 아니라) 콘텐츠 제작자들은 과거의 플랫폼에 묶여 있기보다는 그 바깥으로 나와 더 넓은 가능성을 찾는 일이 (당연한) 생존의 길로 받아들여지게 됐다. 김태호 PD의 이번 선택은 그래서 한 콘텐츠 제작자의 행보가 아닌 시대의 변화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