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서 <놀면 뭐하니> 클립을 봤는데 너무 재밌어서 찾아봤더니 MBC에서 만들었더라고요. 그때 MBC를 처음 알았어요.” 최근 내 주변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든 칼럼이 하나 있다. <기자협회보>에 실린 문화방송(MBC) 장슬기 데이터전문기자의 칼럼 ‘누가 언론사 목에 디지털을 달 것인가’의 도입부는 위와 같이 시작한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11번은 MBC, 7번과 9번은 KBS, 6번은 SBS라고 알고 자란 내 세대 사람들은, 이 칼럼의 도입부에서부터 숨이 턱 하고 막혔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칼럼의 진위 여부를 의심하기도 했다. “에이, 설마 과장이겠지”. 사실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니다. 10대들은 궁금한게 있으면 구글이나 네이버 대신 유튜브를 검색해 정보를 찾고, 예능이나 드라마는 유튜브에 올라온 클립으로 소비하고, 뉴스도 유튜브에 수두룩한 ‘이슈 총정리’ 유형의 채널들로 본다는 이야기가 처음 나온 게 벌써 5~6년 전이다. 그때 ‘요즘 10대들’이라 불리던 이들이 이제 20대가 되었다. 구매력이 높고 트렌드를 선도하는 세대라 광고주들이 선호한다는 ‘2049’ 시청자 블록의 가장 끝단, 20대 초반 시청자들이 이제 TV에서 멀어진 것이다. 과거에는 모두가 TV를 보는데 그중 일부가 유튜브도 보는 거였다면, 이제는 바야흐로 모두가 유튜브를 보는데 그중 일부가 아직도 TV를 보는 시대가 되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TV는 정해진 편성에 맞춰 프로그램을 봐야 하는 시간적인 한계가 있지만, 유튜브는 시청자가 편한 시간에 아무 때나 콘텐츠를 시청하면 된다. TV만 존재하던 시절에 성장한 이들에게는 유튜브가 ‘새롭고 편리한 미디어’였으나, TV와 유튜브가 공존하는 시절에 성장한 이들에겐 유튜브가 당연한 것이고 TV는 ‘오래되고 불편한 미디어’인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TV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 굳이 편성시간에 자신의 시간을 맞추는 불편한 일 같은 건 하지 않는다. 이제는 TV로 트렌드를 선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최근 크게 사랑받거나 유행하면서 ‘밈’으로 작동했던 코드들을 되짚어보자. 김해준이 선보인 캐릭터 ‘최준’, 가수 비의 노래 ‘깡’의 새삼스러운 재조명, 11년 전 <무한도전> 알래스카 특집편에 등장했던 유행어 ‘무야호’의 뜬금없는 대유행, 발매 4년 만에 역주행에 성공한 브레이브걸스의 노래 ‘롤린’에 이르기까지. 이 중 TV가 유행시킨 코드는 없다. 방송사가 수많은 유튜브 채널 중 하나, ‘원 오브 뎀’으로 전락하면서, 이제 더 이상 <1박2일>이나 <무한도전>처럼 당대의 트렌드를 주도하고 한 시대를 정의하는 공통의 콘텐츠 경험을 갖기는 어려워졌다. 물론 아직도 시청률 20~30%대를 자랑하는 프로그램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그러나 이런 프로그램들을 한번도 보지 않고 시절을 보내는 이들도 많아졌다. 유튜브와 넷플릭스에 새로운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는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무한하다. 굳이 ‘대세’ 프로그램을 챙겨 보지 않아도, 누구든 자신이 즐길 만한 대안을 얼마든지 소비할 수 있다. 다양한 라이프스타일과 성향을 겨냥한 콘텐츠가 동시다발적으로 인기의 흐름을 만들어가는 시대가 된 덕에, 이제 ‘대세’를 따르지 않는 수준을 넘어서 ‘대세’가 뭔지 몰라도 전혀 지장이 없는 시대가 된 셈이다. 굳이 대세에 따르지 않아도 누구나 자신의 취향을 보장받을 수 있는, 다양성이 존중받는 시대로 이행한다는 이야기이니 좋은 일처럼 들릴 것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사는지 잘 모르고,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렇게 살아도 불편할 일이 없어졌으니까. 유튜브 시대가 되면서 우리는 단순히 예능이나 드라마만 입맛대로 골라 볼 수 있게 된 것이 아니라, 뉴스 또한 각자의 정파적 관점에 부합하는 뉴스만 골라서 볼 수 있게 되었다. 레거시 미디어에서의 뉴스 소비도 이미 충분히 정파적이었는데, 내 입맛대로 뉴스를 골라 보며 확증편향을 키울 수 있는 유튜브 공간에서의 뉴스 소비는 더 극단적이 된다. 그리고 뉴스 시청 패턴을 유튜브 알고리듬이 인식하기 시작하면, 비슷한 성향의 정보만을 큐레이션 해준다. 나와 관점이나 입장이 다른 이들의 의견도 접하고 타협점을 모색하며 중간지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완전히 휘발된 셈이다. 모두가 다 함께 보는 뉴스도, 예능도, 드라마도 사라진 시대, 한 시대를 정의하며 공론의 장 역할을 하던 공통의 콘텐츠 경험이 사라졌다. 각 방송사나 언론사마다 뉴미디어를 공략하며 ‘디지털 퍼스트’를 외치고 있다. 자신들의 콘텐츠를 소비해줄 충성도 높은 독자에게 어떻게 맞춤형 정보를 전달할 수 있을지 연구하는 이들이 한가득이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고민해야 하는 건, 저마다 다른 이들을 한자리에 묶어내는 공론의 장을 복원하는 방법이 아닐까? 개개인에 맞춘 콘텐츠 경험만을 파고드는 동안, 서로를 이해하고 설득할 공간이 사라지고 있는데?

유튜브 전성시대, 사라진 건 텔레비전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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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전성시대, 사라진 건 텔레비전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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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27일 오전 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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