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감'은 대체 어디서 찾아야 하는 거죠? ] 01. 며칠 전 커리어리에 올린 '좋은 글쓰기를 위한 조심스러운 제안' 글을 보시고 감사하게도 몇몇분께서 추가질문을 보내주셨습니다. 그중 여러 번 중복된 질문인 '회사원은 어디서 글감을 얻어야 하나요?'라는 물음에 답을 해보고자 이 글을 씁니다. 02. 맞습니다. 직장인으로 일하면서 자기 글을 쓴다는 것도, 그리고 그 글을 쓰기 위한 글감을 찾는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명확한 관심사가 있다거나 어딘가 정통한 분야가 있다면 그걸 베이스로 글쓰기를 이어갈 수 있겠지만 평범한(?) 직장인들에게는 무엇을 쓸지를 정하는 것부터가 꽤 큰 고통이 될 때가 있으니까요. 03. 제가 추천드리는 방법은 일종의 접근법에 더 가깝습니다. 저는 글감이 찾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온전한 글감'에 대한 환상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대부분이 쓰는 것보다는 읽는데 더 익숙하다 보니 '아 글 한편이 되려면 적어도 이 정도 이야깃거리는 있어야 되나 보다'라고 판단하시는 경우가 많은 거죠. 04. 저는 온전한 글감을 찾기보다는 '불완전한 글감을 내 글로 완성해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혹시 이어 그리기 게임 아시나요? 앞사람이 일부분만 그려준 그림에 내가 추가로 그림을 그려 완성해야 하는 게임이죠. 저는 때로는 글을 쓰는 게 이 이어 그리기 게임 같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다른 사람이 얼추 던져놓은 화두에 나의 생각을 다시 전개해 보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글이 될 때가 많으니까요. 05. 이를 위해서 개인적으로 자주 사용하는 방법은 다른 사람의 말에서부터 글쓰기를 출발해 보는 것입니다. 토크쇼에 등장한 연예인이 한 말이든, 직장동료가 점심시간에 무심코 내뱉은 말이든, 퇴근 후 침대맡에서 읽던 에세이에 등장한 한 줄 문장이든 간에 여러분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움직인 단어나 문장에서부터 글을 써보는 겁니다. 06. 이렇게 글을 쓰다 보면 그 말들이 왜 나를 흔들어놓았는지를 고민하게 되고, 그 과정을 역추적하는 과정에서 여러분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게 됩니다. 더불어 그 생각을 받쳐줄 과거의 에피소드들을 살펴보게 되고 여러분의 표현을 생생하게 만들어줄 더 좋은 단어와 문장을 찾게 되죠. 저는 이 과정이 매우 현실적인 글쓰기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07. 얼마 전 한 다큐멘터리 등장한 노신사분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젊을 땐 인생이 계단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이제 와서 보니 인생은 둘레길 같은 거더라고요. 목표를 항해 계속 올라가는 것보다는 나에게 소중한 것들을 껴안고 그 주변을 걷는 게 좋은 인생이니까요.' 그리고 저는 지금 이 말을 바탕으로 새로운 글 한편을 쓰고 있습니다. 저에게 둘레길이 되어준 에피소드들을 모으고 또 저만의 생각들도 덧붙이면서요. 08. 좋은 글은 좋은 글감에서 탄생하는 게 아니라 평범한 글감도 나만의 글로 풀어낼 수 있을 때 완성되는 거라고 봅니다. 세상에 밀키트 같은 글쓰기는 없거든요. 대신 우리 스스로 '이걸 볶으면 무슨 맛이 나려나?', '이거랑 이걸 같이 먹어도 되려나?'하는 생각으로 시도해 보는 다양한 글쓰기들이 여러분들의 글에 마침표를 가져다준다고 생각합니다. 09. 글 쓰는 취미를 가지고 싶은 분들께 너무 좋은 글감을 찾아 헤매지 말라는 당부의 말씀을 드리는 이유도 이와 같죠. 저는 늘 떠올리는 것보다 풀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 저게 괜찮은 글감일까라고 의심하지 마시고, 저것도 글감이 될 수 있겠지라는 마음으로 글을 써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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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12일 오전 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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