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놈의 '후킹(hooking)'이 요란함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 01. 지난 봄에서 초여름으로 진입하던 무렵 참 재미있게 본 드라마가 '나의 해방일지'였습니다. 담담하지만 특별한 대사들이 가득했던 작품이었거든요. 수많은 어록과 명대사를 낳았지만 그중에서도 평범 한듯 끌렸던 대사 하나가 있었습니다. "나는 니가 말로 사람을 홀리겠다는 의지가 없어서 좋아. 그래서 니가 하는 한마디 한마디가 다 소중해." 늘 조용조용한 성격으로 살아가는 주인공 미정에게 친구인 현아가 건네는 말입니다. 02. 저는 가끔 브랜드나 제품, 서비스에 붙는 문구 하나, 제목 하나에서도 이런 비슷한 감정을 느낍니다. 주목 한번 받기가 아무리 어려운 세상이라고 해도 클릭 한 번으로 들통날 어그로를 끌면 이제는 화가 나기 보다 가엽게 여겨지기까지 하기 때문입니다. 말로 사람을 홀리겠다는 의지가 없어서 좋다는 게 브랜드 마케터가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최소한의 이성은 붙들고 있어야 좋은 글과 말로 고객을 끌어모을 수 있기 때문이죠. 03. 한때 저의 조직장이었던 분은 소위 마케터가 괴물이 되기를 바라는 분이었습니다. 무슨 짓을 해도 좋으니 사용자 한 명을 더 끌어오는 게 중요하다는 철학을 가진 사람이었죠. 아, 여기서 이렇게 생각하는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 지금 글을 쓰는 너보다 그 사람이 더 현실적인 사람인 거야'라고 말이죠. 하지만 매번 터지는 논란과 이슈 속에 저는 업무의 10% 정도를 사과문 쓰는 일에 매달려야 했습니다. 그래도 그분의 철학은 흔들림 없이 편안했죠.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사건사고가 따를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거든요. 04. 그래서 가끔은 나의 해방일지의 주인공인 미정 같은 브랜드나 제품의 말이 더 와닿을 때가 있습니다. 얄팍한 말로 일단 갈고리라도 하나 걸고 보겠다는 태도 대신에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소중한 화자도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저는 그게 진짜 브랜딩을 위한 글쓰기라고도 생각합니다. 우리의 이야기를 들을 사람들이 우리를 믿고 먼저 귀를 기울여주는 것만큼이나 완벽한 브랜딩은 없을 테니 말입니다. 05. 후킹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마케터나 기획자를 비난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적어도 사람을 돌려세워서 우리의 말을 듣도록 준비시키는 그 과정이 그저 요란함과 천박함으로만 동작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려드리고 싶은 겁니다. 06. 결과적으로 브랜드든 제품이든 서비스든, 말과 글로 우리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과정 속에서는 '좋은 페르소나'를 갖는 게 0순위라고 생각합니다. 말로 사람을 혹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말보다 그 사람의 페르소나를 믿는다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진짜 후킹은 언어가 아닌 존재 자체로 이뤄져야 하는 부분인지도 모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따로 한번 주제를 떼어내 다뤄볼 예정입니다.) 07. 브랜딩하고 마케팅하는 데 손에 흙 안 묻혀 가며 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당연히 눈에 보이는 뻔한 수를 써야 할 때도 있고 남들 할 때는 손가락질했던 얄팍한 한방에 기대야 할 때도 있다는 거도 알고요. 하지만 순간의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과 내 철학이 매몰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건 힙한 마케팅도 그로스해킹도 아니거든요. 08. 그러니 가끔은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나의 한마디 한마디를 모두 소중히 들어줄 수 있는 사람들인가? 그렇지 않다면 나는 왜 그런 화자가 되지 못했나?'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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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30일 오후 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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