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일을 먼저 하고 있는 당신에게

뜨끔하셨나요? 맞아요. 인간의 뇌는 고통을 피하게 되어 있습니다. 에너지를 아끼고 싶어합니다. 새로운 관점을 들으면 들리지 않아요.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면 스트레스 반응이 옵니다. 누가 모르는 얘기를 하면 짜증나고 불안합니다. 그런데 생전 처음 해보는 일을 해야 하는데 성과도 내야 한다면? 자연스럽게 미루게 됩니다. 각종 핑계를 만들어내죠. 아니 이거 먼저 해야 되지않아요? 이것도 제대로 안해놓고 뭘 하자는 거에요? 잠시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어볼까요. 자신을 돌아봅니다. 몸과 마음이 어려운 일을 거부하기 때문에 쉬운 일 먼저 하고 계신거 아니에요? 본인은 잘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잘 못하는거 지적하면서 효능감 느끼고 계신거 아닌가요? 제가 보기엔 맞는 것 같은데요? 오늘의 이야기 시작해보겠습니다. 일잘러는 칭찬과 인정을 받아왔습니다. 내가 일은 좀 잘하지! 아 그거, 해봤고 성과도 내서 여기까지 왔죠! 문제는, 성장에는 역설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장한 사람은 계속 알을 깨고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알 속은 너무 따뜻해요. 지금까지 성장해온 방법론에 집착하며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합니다. 아니 이거 이렇게 하면 쉽게 할 일을 왜 못하고 있는거요? (나한테 주면 한시간이면 할 일을 왜이렇게 일들을 못해!) 성장의 함정에 빠진 일잘러는 어느 순간 일의 종목이 바뀌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한개의 몸으로 낼 수 있는 영향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일개 팀원으로 일하더라도 팀에 큰 영향력을 미쳐 다른 사람들이 일을 더 잘 할수 있도록 도와야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닫기 시작하죠. 문제는 이 지점에서부터 발생합니다. 솔로 플레이어에서, 멀티 플레이어로 자신의 영향력을 넓히려면, 일의 종목이 갑자기 바뀌어버립니다. 안해본 일들이 산적해 있고, 다 잘해야 한다는 압박도 함께 따라옵니다. 이 지점에서 성장의 함정에 빠진 일잘러는 쉬운일, 내가 잘하는 일, 내가 인정받는 일로 계속 회귀하기 시작합니다. 자기도 모르게요. 문제정의라는 일은 너무 어렵습니다. 추상적이고, 책임져야 하는 부분도 많죠. 그러니 내가 항상 잘해왔던 일을 먼저 건드리기 시작합니다. 구조화가 되어 있는 일, 칭찬 많이 받았던 일, 결과가 눈에 보이는 일이죠. 빠른 시간에 몰입해서 싹 끝내고나면 ‘역시 나는 이걸 잘해!’라는 뿌듯함의 순간도 잠시, ‘아… 근데 문제정의를 안했네?’로 돌아옵니다. 고통을 회피하고 눈 앞의 달콤한 초콜릿을 먹어버린 일잘러는 다시 광활하고 넓은 문제정의, 문제해결, 팀간소통, 성과관리 등 더 큰 영향력을 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을 맞이하고 그 사이즈와 불확실성에 질려버리게 되죠. 두통이 오기 시작하고, 탈모가 옵니다. 일을 하는데도 잘 하는지 모르겠고, 신입사원으로 돌아간 것 같기도 하고. 아니 내가 일 그렇게 잘했는데, 응? 이건 왜, 응? 다들 이렇게 사는 거였어? 최근 자기계발 담론에서 자주 들리는 단어 중 하나가 ‘지연된 만족(delayed gratification)’입니다. 나중의 보상을 위해 눈 앞의 초콜릿을 먹지 않고 버틴 아이가 결국 성공한다는, 멋진 이야기죠. 눈앞의 고통을 용감하게 맞이해 돌파하고, 막막한 상황에서 어찌되었든 몸을 움직여 실행하며, 안해본 일도 일단 몸을 던져 뛰어드는 사람이 먼저 갑니다. 혁신이란 것이 사실 사후적으로 보면 그렇게 큰 일이 아닐 수 있어요. 모두가 10초에 100미터를 뛰는 시절에는, 올림픽 1위 선수도 100미터 10초대를 깨지 못했던 시절이 기억나지 않는 것처럼요. 혁신과 발전은 계속 쌓여 축적되고, 사후의 관점에선 혁신은 질적인 변화가 아니라 양적 성장에 가깝죠. 아니 핸드폰으로 편하게 송금할 수 있는 일이 뭐가 그렇게 어렵지? 핸드폰으로 주문해서 물건 받는 일이 로켓을 우주에 올리는 일보다 어려울까요? 혁신의 난이도가 낮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경우에, 혁신은 ‘마음의 혁신’이라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안감, 막막함, 불확실성을 뚫고 따뜻한 알 속을 깨고 나오는 인간이 앞서가게 되어 있습니다. 영향력을 넓히고자 한다면, 알은 자신이 직접 깨고 나와야 합니다. 쉬운일을 먼저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항상 하던 일, 일단 하면 작더라도 임팩트가 나오는 일, 칭찬 받을 수 있는 일이죠. 종목이 바뀌었다면 미지의 공간으로 몸을 밀어 넣어 모험을 떠나야 합니다. 더 추상적이고 어려운 일이 바로 혁신에 더 가까운 일이고, 더 많은 영향력으로 가는 길이니까요. 사실 저도 고민이긴 합니다. 쉬운일을 계속해서 저항을 제로에 가깝게 낮춰서 내 몸이 편안하고 행복한 일만 계속 해야 할까? 아니면 지도 밖으로 행군하며 안해본 일, 불안한 일을 해봐야 할까? 그런데 창조의 충동에 못이겨 뭔가 일을 벌여놓고 일단 해놓고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더군요. 한 인간이 모든 것을 잘할수는 없기 때문에 뒤돌아보면 그냥 자전거를 타는 수준의 초보적인 일들도 많아요. 그렇지만 눈 앞에 초콜릿에 미소를 남기고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갈 용기를 매번 내는 훈련을 할 수 있다면, 지도를 찢고 우주로 나아갈 수 있을 거에요. 내일의 저에게 남기는 편지입니다. 쉬운일을 먼저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다시 생각해보세요. 당신은 초콜릿을 먼저 먹는 사람이 되고 싶은지, 아니면 코뿔소가 되고 싶은지.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또는

이미 회원이신가요?

2023년 2월 27일 오후 1:4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