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 따위를 추구해서는 안된다

인정투쟁과 지위추구 행위를 흥미롭게 생각해왔습니다. 왜 인간은 자신의 만족과 영향력 확대를 목표로 삼지 않고 타인의 인정에 그렇게 목을 매는지, 이해하기 쉽지는 않습니다. 자신을 만족시키는 상징을 모으면 될 일이지, 왜 그렇게 지위와 계층을 상징하는 표식들을 모아 치렁치렁 달아야 하는지도요. 외계인이 지구인을 관찰한다면 많은 질문을 던질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타인의 인정을 얻고 자신이 더 낫다는 객관적인 증거를 얻으려고 하는 것일까. 비교따위는 쓰레기통에 넣고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삶을 살면 될 일인데. 한국인을 본다면 아마 더 크게 놀라지 않을까요. 집단주의와 개인주의의 흥미로운 해악들을 섞어 놓은 듯한 부분이 있으니까요. 인정에 목을 매는 사람과 얘기를 나눠보면, 언어에 주어가 없습니다. 요즘 핫하고 요즘 힙하고 요즘 변하는 트렌드를 따라가느라 혼이 다 빠져있죠. 그걸 자기가 왜 좋아하고 왜 중요하게 생각하며 왜 많은 그것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합니다. 아마 날카롭게 질문을 던지면 칼에 찔린듯 멍한 표정을 짓거나, 불쾌한 표정을 지을 겁니다. ‘응? 아니 그게 핫하니까 지금 해야한다고요. 이해가 안되세요?’ 인정과 신뢰는 다르고, 신뢰는 매우 중요하지만 인정은 추구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얘기일까요. 신뢰는 객관적입니다. 나의 돈, 시간, 에너지를 상대에게 나눠줬을 때 그 가치가 퇴색되지 않고 더 커지고 그 일부는 나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높은 확률의 믿음이죠. 나와 매우 다르고, 심지어 취향이나 가치관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신뢰하는 자에게는 돈을 씁니다. 믿고 맥북을 삽니다. 물이 깨끗할 것이라고 믿고 생수를 삽니다. 음식점에서는 음식이 신선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지갑을 엽니다. 기업이나 제품에 대한 신뢰가 비교적 소극적이라면, 더 적극적인 신뢰는 리스크가 높은 환경에서도 특정 사람, 창업가, 제품 등에 돈, 시간, 에너지를 투자하게 합니다. 내 머리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맥락이더라도 신뢰할 수 있다면 시간을 쓰게 됩니다. 열정 있는 청년에게 시간을 쓰는 이유, 아무것도 없는데 눈에서 레이저를 쏘아대는 창업가를 믿는 이유, 초기 제품인데 사랑하게 되는 이유가 모두 신뢰를 얻었기 때문이죠. 인정은 주관적인데다가, 사회적 동질성을 기반으로 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똑똑한 사람들은 특히 집단사고에 빠질 가능성이 높은데요, 지식 비즈니스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동족’의 인정을 기반으로 하는 산업이기 때문입니다. 동족에게 인정을 받아야 성공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달라지는 일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새로운 일을 하더라도 어떻게 기존의 맥락에 맞춰서 물을 타서 최소함의 새로움을 추구할지 고민하게 되죠. 리스크가 너무 커서 새로운 것보다는 그냥 항상 하던 걸 하게 될 가능성도 높습니다. 정치라는 영역에서 혁신이 힘든 것은, 신뢰가 아닌 인정에 기반하고 있는 비즈니스이기 때문일 겁니다. 이익집단이나 정당이 작동하는 방식은 결국 이익, 정체성, 생각의 동질성이니까요. 달라도 믿을 수 있는 사람과 함께하는 모델이 아니기 때문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는 것이죠. 집단사고는 정말 위험합니다. 성장을 막습니다. 빠른 변화에 새롭고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없게 되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보수화됩니다. 인정투쟁에 목을 매다보면 나도 모르게 레거시가 되어 다음 세대의 길을 막게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주변의 인정을 받고 있고, 이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새로운 걸 받아들일 수는 없거든요. 인정을 잃을 수는 없으니까. 제 생각입니다만, 인정 따위를 추구해서는 안됩니다. 세상에 멋지고 대단한 분들 많지만, 이들의 인정이 아닌 신뢰를 얻어야 합니다. 비슷한 사람이고 자신의 머리로 이해하고 동조하는 사람이니 치켜세워주는 인정 말고, 정말 다르고 추구하는 가치도 동일하지 않을 수 있고 심지어 강하게 반대하는 부분도 있지만, 아 이 사람의 실력이나 열정은 신뢰할 수밖에 없다는 말을 들어야겠죠. 인정에 목매는 자는 협소하게 늙어갈 것이고, 신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넓고 젊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모두의 인정을 받을 수는 없고 추구해서도 안됩니다. 반면 신뢰에는 네트효과가 있어서, 아 정말 싫은데 실력이 좋으니 이것만은 믿고 맡기게 될 수 있겠죠. 인정 따위는 쓰레기통에 넣고, 신뢰를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