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버리가 6년 만에 브랜드 로고를 제자리에 돌려놓은 이유

01. 지난 2월 버버리가 공개한 새로운 로고는 두 가지 반응을 자아냈습니다. 그동안 버버리에 대한 애착이 컸던 클래식 버버리 팬들은 '드디어 버버리가 진짜 모습으로 돌아왔다'고 환호했고, 버버리에 대한 팬십이 크지 않았던 일반 대중들은 '원래 버버리 로고가 저거 아니었어? 대체 뭐가 바뀐 거지?'라고 생각했거든요. 02. 약 110년 넘게 이어온 버버리의 로고는 철갑옷을 입은 기사가 말 위에 올라타 프로섬 플래그를 휘날리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던 2018년 버버리는 상징을 넘어 문장과도 같던 그 비주얼을 걷어내고 아주 단순하고 깔끔한 텍스트만으로 브랜드를 나타냈죠. 흰 바탕에 BURBERRY라고 심플하게 쓰인 글자 아래는 LONDON, ENGLAND만이 작게 쓰여있었으니까요. 03. 명품 시장이 IT 플랫폼에 올라탄 이후 가장 오랫동안 고민한 (그리고 지금도 고민하고 있는) 포인트 중 하나는 의외로 서체였습니다. IT 기업들의 로고야 태생부터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모양으로 만들어졌고 자주 업데이트를 거쳤지만, 명품 시장은 전혀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들의 복잡하고 클래식한 로고를 온라인상에서 온전하게 보여주기에는 색감부터 텍스처까지 모든 것이 걸림돌이었기 때문입니다. 04. 그중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인 논란이 바로 '세리프냐 산세리프냐'일 겁니다. 워드 프로그램에서 서체를 선택할 때마다 자주 보는 단어지만 세리프와 산세리프는 특정 폰트를 지칭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스타일이자 기조입니다. 세리프(serif)는 원래 장식에 사용되는 선을 뜻하는 용어로 대개 문자의 획에 특정한 장식이 붙어있는 서체를 뜻합니다. 바탕체나 궁서체처럼 글씨의 시작과 끝이 다른 모양이거나 굵기가 차이 나는 형태를 말하죠. 05. 반면 산세리프(sans-serif)는 세리프에 '없다'를 뜻하는 프랑스어 sans가 결합돼 문자 그대로 세리프가 없는 서체를 의미합니다. 글자의 시작과 끝이 동일한 모양과 굵기를 가지고 있어 우리에겐 굴림체, 돋움체, Arial 등의 폰트로 익숙하죠. 흔히 세리프는 인쇄물과 같은 오프라인 결과물에서 뛰어난 가독성을 보이고 특히 많은 양의 텍스트가 쓰여있는 경우 정보를 판단하거나 인지할 수 있도록 하는데 유리합니다. 반면, 산세리프는 모니터와 같은 전자 플랫폼에서 가독성이 높고 확대해도 세리프에 비해 이질감이 없다는 장점 덕분에 오늘날 깔끔하고 세련된 서체로 인식되고 있죠. 06. 이 배경을 알고 나면 명품 브랜드들의 로고 플레이 방향성이 휙휙 변하는 이유를 어느 정도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정통성 vs 시대 흐름, 오프라인 vs 온라인, 미니멀 vs 팬시함의 기로에서 무엇 하나를 명확하게 선택하기가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죠. 그래서 개인적으로 2014년쯤부터 불어닥친(?) 명품 브랜드들의 산세리프 로고 플레이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참 궁금했습니다. 07. 그런 측면에서 버버리 로고의 회귀는 반가우면서도 중요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산세리프를 버렸다가 아니라, 자신들이 100년 넘게 유지해온 정체성이 단번에 잊혀질 위기라고 판단하자 다시금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앞으로 버버리의 행보에 합류하는 명품 브랜드들이 늘어날지 아니면 또 자신들이 선택한 비전을 꾸준히 밀고 갈지를 보는 것도 소비자로서는 흥미진진한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08. 오스트리아 여행 당시 명품 거리로 유명한 빈의 게른트너 거리를 걷고 있을 때였습니다. 제 뒤로 어느 외국인 관광객이 '저게 우리가 아는 그 셀린느야? 아니면 여기 로컬 브랜드야?'라고 이야기하는 걸 우연히 듣게 되었어요. 거기엔 2018년에 리뉴얼된 셀린느의 새 간판이 달린 매장이 있었거든요. 사실 버버리나 발망에 비하면 셀린느는 원래도 산세리프 로고를 가지고 있는 브랜드지만 É의 악센트를 지우고 문자들의 자간을 좁혀 통일해버리는 바람에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진 거죠. 변화나 업데이트라고 받아들여지지 않고 소비자로 하여금 '헷갈리게만 만들어버린' 리뉴얼은 어쩌면 최악의 시나리오일지도 모릅니다 😭 09. 명품 소비층은 점점 어려지고 있고 디지털 플랫폼의 진화는 무궁무진하니 그 속에서 수십 년, 수백 년된 명품 브랜드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진로를 설정해갈지가 개인적으로는 참 궁금합니다. 브랜딩에도 정해진 답이 없고, 기업을 경영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일 테니 어쩌면 제가 몇 년 뒤에 '버버리의 선택이 틀렸다'는 글을 쓰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맘속으로는 버버리의 행보 또한 응원해 봅니다. 과감하게 휫날리는 프로섬 깃발을 오랜만에 보니 다시 예전의 그 버버리 아이덴티티가 확 떠오르고도 남았거든요.

"명품 간판, 바뀐 거 알았어?"...브랜드 '로고 미스터리' [김유진의 브랜드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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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간판, 바뀐 거 알았어?"...브랜드 '로고 미스터리' [김유진의 브랜드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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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27일 오후 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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