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대화를 한다. 그리고 저 사람이 나에 대해서 얼마나 우호적인지 알고 싶어한다. 그런데 맞선이나 소개팅 같은 이성과의 만남 후에는 이 궁금함을 어렵지 않게 드러내는데, 일반적인 사회생활에서는 궁금해도 물어볼 곳이 없다.
물론, 명확한 답은 없다. 앞으로도 영원히 불가능할 가능성이 크다. 어떤 장치가 개발되거나 신비한 초능력을 지니지 않는다면 말이다. 하지만 이 궁금증에도 재미있는 실마리를 보여주는 연구는 존재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조금은 용기가 될 법한 이야기이다.
에리카 부스비 코넬대 박사와 마거릿 클라크 예일대 교수가 주축이 된 연구진은 대학생 36명에게 한 명씩 대화 상대를 배정하고 짧게는 5분, 길게는 45분 동안 상대방과 대화를 하게 했고 이를 녹화했다. 물론 이들은 실험 참가 이전에는 알고 지내던 사이가 아니다.
대화를 마친 참가자들에게는 2가지 질문이 주어졌다. (1)자신이 상대방에게 얼마나 우호적인 느낌을 가졌는가이다. (2)반대로 상대가 얼마나 자신에게 우호성을 보였는가이다. 참가자들이 상대에게 보였던 우호성이나 호감을 객관적으로 측정하기 위해서 녹화된 영상은 전문가들에 의해 분석됐다. 결과는 흥미로웠다. 분명한 차이가 관찰됐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자신이 상대방을 얼마나 좋아하는가에 대한 판단은 매우 정확한 편이었다. 즉 자신의 판단과 제3자(전문가)의 판단이 일치한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이 나를 좋아해주는 정도에 대한 판단은 그리 정확하지 않았는데, 대부분 더 낮게 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심리학에서 흔히 쓰는 ‘체계적인 평가절하’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결과를 해석했다. 즉, 상대방이 나에게 보였던 실제 호감의 정도보다 내가 느끼는 호감의 정도가 매우 낮다는 것이다.
이렇게 상대방이 보내는 우호적인 태도의 신호를 대부분 사람이 잘 알아차리지 못하고 저평가하는 현상을 부스비 박사는 ‘좋아함의 격차(liking gap)’라고 부른다. 이 현상은 대화가 길어질수록, 대화의 주제가 다소 무겁거나 분위기가 진지할수록 더욱 강하게 나타났다.
이러한 격차는 실험 상황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었다. 연구진은 기숙사에서 지내는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유사한 연구를 실시했다. 자신과 룸메이트가 상대방을 얼마나 좋아하는가를 각각 질문한 것이다.
‘좋아함의 격차’ 현상은 1학년 첫 학기의 거의 3분의 2에 다다른 지점까지도 계속 관찰됐다. 즉, 상대방이 자신을 얼마나 좋아하고 있는가를 고집스럽게 낮게 평가하더라는 것이다. 학기 말에 그 룸메이트와 헤어지는 시점이 다 되어서야 격차 현상은 사라졌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사람들은 타인과의 대화에서 자신이 상대방에게 보여준 호감과 동의의 신호들(표정, 몸짓 등)은 명확하게 기억한다. 하지만 상대방이 자신에게 보였던 신호들은 상당 부분을 놓치고 기억에 담지 않는다. 게다가 자기가 실수한 내용들을 과도하게 기억한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떤 사람을 한 번 만나고 난 뒤에 우리는 꽤 많은 경우 그 사람이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는 지레짐작으로 그 이후의 만남을 스스로 포기하거나 움츠러드는 경우가 무수히 많다. 직장 안팎에서의 사회생활에서 말이다.
하지만 확률적으로 봤을 때는 우리의 우려보다는 덜 나쁜 결과를 기대해도 괜찮을 것 같다. 학기 말이 되어서야 ‘좋아함의 격차’가 사라진다는 결과를 상기해 보시라. 즉 거의 4개월 간 매일같이 얼굴을 보고 대화를 나눈 사이 정도는 되어야, 상대방이 나에게 표현하는 바를 내가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되지 않겠는가.
아! 이 연구는 일반적인 사회생활 상황에 적용되는 연구이지, 소개팅이나 연인을 찾기 위한 연구가 절대로 아니다. 남녀 간의 만남은 훨씬 더 다른 차원의 변수들도 함께 작용할 테니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