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동료, 친구, 가족 또는 본인 스스로와 공감적 경청을 사용하는가? 실제로 이러한 유형의 의사소통에는 우리가 인식하기 어려운 많은 장애물들이 있다.
아이들의 경우 자신의 의견이 존중받는 상호 작용을 경험을 통해 더 나은 심리/사회적 발달이 이루어진다. 반면 의사소통 중 무시나 비판을 받고 과소평가를 받게 되면, 고립되고 부적절한 자아 개념이 구축된다.
효과적인 의사소통이 어려운 메커니즘에서 자주 나타나는 또 다른 현상이 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도 자신을 효과적이고 공감하는 청취자로 착각하는 것이다. 이 능력을 방해하고 약화하는 특정 역학은 반드시 알아야 할 무의식적인 적이다.
오스트리아 정신과 의사 겸 개인 심리학 창시자인 알프레드 아들러는 모두가 상대방의 눈, 귀 그리고 마음이 되어 느끼는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은유는 공감의 본질을 설명하지만, 상대방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집중하기는 쉽지 않다.
미국 루이지애나 주립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능동적이고 공감적인 경청은 모두가 개발해야 하는 귀중한 사회적 기술이다. 따라서 일상 대화에서 공감적 경청에 방해하는 관행을 파괴하는 방법을 아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1️⃣안심, 상대방의 경험을 차단하는 방법
‘아무것도 아니야‘, ‘너무 걱정하지 마‘, ’금방 지나갈 거야’ 같은 말로 상대를 달래는 노력이 좋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고통을 겪거나 걱정하는 사람에게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말보다 더 좋은 말은 없다. 하지만 상대의 불편한 감정을 완화하거나 지우려는 것은 상대의 감정적 경험을 차단하므로 공감적 경청을 파괴한다. 예를 들어,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말은 특정 순간의 감정을 과소평가하는 것일 수 있다.
2️⃣심문 및 간접심문
가까운 사람과 경험을 공유할 때 ‘왜 그렇게 생각하니?‘, ’왜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해?‘, ’사실이라고 확신해?’ 같은 질문을 연신하면 대화가 경찰 심문처럼 바뀔 수 있다.
경청하지 않고 과도한 질문을 하면 상대방에게 심문받는다고 느끼게 한다. 공감적으로 경청하려면 타인의 경험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존중하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진정한 공감적 경청은 상대방이 의사소통하는 동안 들여다볼 수 있는 청각적 거울을 만드는 것과 같다.
3️⃣조언하기
타인과의 관계에서 세뇌를 주입하고 요청하지 않은 조언과 지침을 신속하게 제공하는 사람들이 많다. 공감적 의사소통은 자신의 관점을 강요하지 않는 포괄적인 경청을 포함한다.
4️⃣분석 및 탐색
공감적 경청이 파괴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감정적 수사를 수행하려는 욕구와 관련이 있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면밀히 조사하고 파쇄하며 위반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냉철한 지성주의 경험의 원인과 유발 요인을 찾는 것은 그들의 경험을 차단하는 방법이다.
5️⃣주제 변경, 고통스러운 무효화 형식
누군가에게 사실, 느낌 또는 생각을 밝히거나 공유하려고 시도했는데 바로 화제를 돌리는 경험을 했는가? 마치 무시하는 것처럼 전혀 다른 화제를 이야기한다. 이는 공감적 경청을 파괴하는 매우 고통스러운 방법이다.
6️⃣강요된 공감
‘아! 정말요? 진짜 죄송해요‘, ’정말 끔찍해요!’ 어떤 사람은 누군가를 감정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을 암시하기 위해 자신의 해석을 사용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들의 태도는 가짜라는 것이 티가 나기 때문에 불편과 상처만 남긴다.
7️⃣폐쇄적 표현
폐쇄적 표현은 화자의 감정적 경험을 최소화하거나 방해한다. 상대방이 계속 정직할 기회를 거부하는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
‘넌 그래도 직업/자녀가 있잖아.‘, ’A, B 또는 C 같은 일은 겪지 않았지‘, 또는 ‘걱정 마. 최소한 X, Y 또는 Z는 계속할 수 있어.’ 같은 표현은 개인을 현실과 분리한다.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의사소통하는지 아는가? 사실 의사소통할 때 필요한 성찰을 항상 수행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고 지나치기 쉽다. 공감적 경청을 파괴하는 방법은 다양하게 있으며,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이런 방식들을 채택하기도 한다.
타인의 말을 들을 때는 그들을 판단하거나 문제를 해결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말아야 한다. 자신을 낮추고 상대의 말에 집중해야 한다. 지혜란 듣는 법을 아는 것이다. 서로를 돌본다는 것은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 앞에 누가 서 있는지 발견하고 이해한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