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퍼렐 윌리엄스가 루이비통의 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reative Director)로 임명되었다는 발표에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생각해보면 그럴 만도 하지 않은가? 실제로 그는 패션 아이콘이고, 자신의 브랜드를 두 개나 냈으니까. 게다가 2004년 루이 비통과의 컬래버레이션으로 내놓은 ‘밀리어네어 컬렉션’ 선글라스는 패션계에 돌풍까지 일으킨 바 있다. 그런데 또 나의 깐깐한 마음 한구석엔 이런 생각도 고개를 쳐든다. ‘디렉터는 아무나 하나?’ 패션지 〈에센스(ESSENCE)〉의 에디터 셸튼 보이드 그리프스의 트윗은 큰 공감을 얻었다. “퍼렐을 사랑하지만 이건 아니지! 기회를 갖지 못한 젊고 재능 있는 디자이너들이 얼마나 많은데, 백만장자 셀럽이라니?” 이런 글을 읽으면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 물리적인 뼈를 갈아 넣고 있을 수많은 패션 디자이너의 마음에 공감하게 되는 법이다. 〈에센스〉는 그냥 잡지가 아니다. ‘흑인 여성의 라이프스타일’을 표방하는 매체다. 단 한 번도 흑인 여성이 아닌 모델이 커버를 장식한 적이 없는 매거진이다. 셸튼 그리프스가 이 매체 전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겠으나, 블랙 커뮤니티에서도 퍼렐의 영전을 축하만 하는 건 아닌 게 분명하다. 핵심은 결국 ‘디자이너’다. 펜 하나로 런웨이를 수놓을 드레스의 질감까지 표현할 줄 아는 사람들, 흔한 나일론 천을 메트 갈라 의상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사람들. 그중에서도 루이비통에 들어갈 만큼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사람들을 퍼렐이 이끌어도 되겠느냐는 말이다. 그가 자신의 브랜드를 운영할 순 있다. 그렇다고 그가 전문가는 아니지 않은가? 또 다른 패션지 〈스프레차(Sprezza)〉의 편집장 클레이튼 체임버스는 “유명 연예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전통적인 패션하우스의 CD가 될 수 있다는 잘못된 선례를 우려하는 이들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그녀의 머릿속엔 손이 부르터가며 천을 다뤄온 패션 업계 종사자들의 노고가 훤하게 그려졌을 것이다. 부정적인 여론이 바뀐 건 퍼렐의 첫 컬렉션이 공개된 이후였다. 파리 패션위크 첫날인 6월 20일 공개된 그의 2024 루이비통 S/S 컬렉션은 기대 이상의 반응을 이끌어냈다. 특히 다미에 패턴과 카무플라주를 섞은 ‘다머플라주’의 우아함은 정말 신선했으며, 버질 아블로의 유산인 스트리트 웨어의 DNA 역시 두 계단쯤 진화한 듯 보였다. 그러나 나의 짧은 취향으로 퍼렐의 성공을 판단할 순 없었다. 트위터 역시 칭찬 일색이었으나, 퍼렐 팬클럽이 피드를 장악했을지도 모른다는 음모론적인 의구심이 들어 패션 척척석사 임일웅 에디터에게 의견을 물었다. “좋았어요!” 그는 퍼렐의 컬렉션이 그간의 우려를 불식할 만큼 꽤 안정적이었다고 말했다. “버질 아블로의 세계관에서 더 나아갔고, 퍼렐만의 베리에이션이 더해졌어요.” 이후 실제로, 퍼렐을 향한 부정적인 반응은 쏙 들어갔다. 퍼렐처럼 깊게 공부하거나 해당 업계에 종사한 바가 없음에도 이렇게 리더가 되어 성공적인 결과물을 낼 수 있다면 사실 전문성이란 아무 의미가 없는 건 아닐까? 문득 코딩을 하나도 못 하면서도 애플을 이끌었던 스티브 잡스가 떠올랐다. 퍼렐과 함께 미국 최고의 패셔니스타로 꼽히던 카니예 웨스트(현재 이름 Ye) 역시 패션에 전문성은 없었으나 직접 디자인한 스니커부터 의류까지 다양한 제품을 내놓지 않았나. 어쩌면 유명세가 전문성보다 더 큰 소구력을 가지는 건 아닐까? “그렇다고 하기에 카니예는 굉장히 긴 시간 트렌드를 이끌어왔거든요. 그냥 유명세로 만들어낸 직위는 오래가지 않아요.” 의류학과를 졸업하고 국내 의류회사에서 MD를 하고 있는 이의 말이다. 그녀는 단순한 유명인이 아닌 ‘아티스트’가 가진 ‘감각’에 대해 말했다. “업계가 패션 전문가가 아닌 다른 분야 아티스트에게 ‘작위’를 부여하는 건, 그들이 가진 분명한 영감이 있기 때문일 거예요. 그들의 창의성에 조직의 다른 사람들이 전문성을 더해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거죠.” 퍼렐의 작업 방식을 최근 인터뷰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루이비통에서 진행하는 모든 건 컬래버레이션이에요. 제 아이디어를 쓰지만, 동시에 전문성을 갖춘 수많은 이들로부터 여러 가지 다른 방법과 관점을 배우거든요. 모든 결정 뒤에는 장인들의 손길이 닿아 있어요.” 루이비통이 바랐을,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다. 그러니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CD의 작품에 어떠한 영감도 안 담겨 있다면 그건 또 다른 잣대로 다뤄야 할 일이다. 또 그 반대로 자신의 감을 지나치게 독단적으로 발휘할 경우 유명세를 빌리기만 한 것보다 못한 꼴이 나기도 한다. 그 적당한 예가 아마 가수 위켄드가 제작에 극본도 쓰고 출연까지 겸한 드라마 〈디 아이돌〉일 것이다. 칸 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진출했다던 이 작품은 시즌2는 커녕 원래 방송분보다 한 편을 줄여 조기 종영하며 그야말로 깨끗하게 망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자신의 감을 과하게 믿은 위켄드의 오만이 있었다. 위켄드는 연출을 맡은 에이미 세이메츠 감독을 촬영 막바지에 내쫓았다. 과하게 컬트적이고 여성적 관점에서만 진행된다는 이유를 댔지만, 또 다른 이유는 자신보다 여자 주인공의 비중이 더 크기 때문이었다. 촬영분은 폐기됐고, 당연하게도 위켄드의 입김은 세어졌다. 작품의 방향성은 완전히 바뀌었고, 쪽대본이 쏟아졌으며, 재촬영에 재촬영이 이어지며 제작비만 늘어갔다. 불만을 품은 제작진이 그의 폭정을 폭로하며 이 끔찍한 망작의 비화가 세간에 알려진 것이다. “한국은 나름 분권이 잘되어 있거든요. 작품 전반을 주도하는 건 작가지만, 연출이나 배우가 수정을 요청하면 최대한 맞춰요. “제아무리 업계 톱인 작가라도 연출을 하지 않고, PD가 극본을 쓰는 일도 드물죠. 이제는 각자 잘하는 걸 해서 모아놓는 게 가장 나은 결과물이 나온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으니까요.” 최근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의 기획 PD의 말이다. 그렇다. 남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것. 그것이 어쩌면 퍼렐을 CD로 뽑느냐 마느냐보다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그 PD는 오히려 나에게 물었다. “미국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것 같은데, 위켄드는 왜 그랬을까요?”

퍼렐 윌리엄스의 루이비통과 위켄드의 , 그 결정적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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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렐 윌리엄스의 루이비통과 위켄드의 , 그 결정적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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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4일 오전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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