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에 지쳐서 아무 것도 못하고 있는 나를 붙들고 나보다 내 일을 더 열심히 챙겨 주는 친구가 있다. 만사가 다 귀찮지만 친구 덕분에 조금씩 힘을 내고 있다. 문득 위기의 순간마다 항상 나보다 열심히 나를 지켜준 친구들이 있었음을 상기해 보았다. 이들 덕분에 많은 우여곡절을 넘겨온 것 같다.


아무래도 과분한 복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친구에게 너를 만난 것이 내 삶에 있어 큰 행운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어떻게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나타나서 내 삶을 풍요롭게 채워주고 있는지, 내 삶은 사실 기적으로 가득 차 있음을 새삼 느꼈다.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순간이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양질의 사회적 관계는 생명줄과도 같은 존재다. 인간의 행복과 건강 전반에 있어 가장 해로운 요소가 외로움과 소외감인 반면, 양질의 관계는 그 어떤 물질적 풍요 못지 않게, 또는 그보다 더 우리의 마음을 풍요롭게 채워준다.


하지만 양질의 관계가 존재하는지 여부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있으니, 바로 우리 스스로 그들의 존재를 ‘인식’하는지 여부다. 잘 찾아보면 좋은 사람들이 내 주위에 존재하고 지금껏 그 사람들로부터 많은 관심과 사랑, 보살핌을 누려왔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그들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면 우리는 여전히 외로움과 불안감에 헤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이 실제로 존재해도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느끼는 주체는 나여서 그 사랑을 내가 보지 못한다면 나는 여전히 애정 결핍 상태로 남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다수의 연구들이 주어지는 사랑과 관심을 받는 사람이 얼마나 잘 캐치하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행복과 정신건강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예컨대 자신이 받은 사회적 지지를 잘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같은 도움을 받아도 이를 ‘도움’으로 잘 인식하고 크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인다. 반면 평소 주변 사람들의 사회적 지지에 무심했던 사람들은 도움을 받아도 이를 다소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을 보였다. 똑같은 사랑을 받아도 내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행복해 질 수도, 아니면 되려 불행해 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웨스트 버지니아대의 심리학자 제나 윌슨(Jenna Wilson) 등의 연구에 의하면 사회적 지지를 잘 인식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지금 이 순간에 머무는 ‘마음 챙김’과 작은 행복도 길게 곱씹어보는 ‘음미하기’ 또한 잘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쩌면 주어진 사랑과 관심을 잘 캐치하는 능력은 내 삶에 있어 진짜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지 알아 차리는 능력과 이들을 찬찬히 둘러 볼 줄 아는 관심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 곁에서 언제나 나를 지탱해주던 사랑과 관심에 눈도장을 찍어 보는 작은 노력이 사랑받고 있다는 충만감을 가져오는 것이 아닐까.


너무나 중요하지만 항상 곁에 있기에 그 소중함을 잊게 되는 공기처럼 우리는 소중한 사람들의 존재에 쉽게 무감각해진다. 그러다가 없어지고 나서야 뒤늦게 뭔가 크게 잘못 되었음을 나에게 그 사람의 존재가 결코 작지 않았음을 깨닫곤 한다.


더 이상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는 순간이 오는 것은, 관계가 오래되어 그 빛이 바랬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내가 내 주변을 둘려보기를 멈췄기 때문일 수도 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기적과도 같은 사랑들을 회피하지 않고 마음껏 음미할 수 있길 바래본다.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둘러보면 '소중한 존재'가 있다

n.news.naver.com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둘러보면 '소중한 존재'가 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또는

이미 회원이신가요?

2023년 12월 10일 오전 11:0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