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에서 김성근(81) 감독보다 많이 잘린 사람은 없다. 그런데 별명이 ‘야신(野神)’이다. 알쏭달쏭한 일이다. 한국 프로야구 감독직에서 일곱번이나 퇴출당한 사람이 어떻게 ‘야구의 신’으로 불릴 수 있을까.


<인생은 순간이다>. 김 감독이 펴낸 책 제목이다. 책 띠지에 “죽었다 깨어나도, 나이를 먹었다 해도 계속 성장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다”는 문장이 쾅 박혀 있었다. 여러 군데 밑줄을 그으며 ‘김성근은 야구장의 철학자’라고 생각했다.


진지한 표정으로 인터뷰 장소에 나타난 팔순의 감독에게 초구를 던졌다. 0️⃣“좋은 인생이란 무엇입니까?”


🅰️나는 ‘어차피 (안 될 거야!)’ 속에서 ‘혹시 (될까?)’라는 조그만 희망을 만드는 것, 그게 좋은 인생이라고 생각해요.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 어떤 결실을 보는 일을 해 왔습니다. ‘김성근에게 맡기면 반드시 새로운 야구를 한다’는 불문율을 만들어냈지요.


1️⃣‘벌떼 야구’부터 떠오릅니다. 인생을 돌아보면 김성근의 인장은 어떤 것이었나요?


🅰️나는 사람들한테 이해가 잘 안 되는 야구를 했어요. 특출난 투수가 없으니 여러 명이 힘을 합쳐 틀어막는 ‘벌떼 야구’도 그중 하나였지요. 돈을 10원 가진 팀이 1000원 가진 팀과 싸우는데 평범하게 하면 절대 이길 수 없어요. 어마어마한 아이디어가 필요합니다. 어떻게 이길지 고민하고 비상식적 승부수를 던지는 것, 그게 김성근 야구였어요.


2️⃣책에 ‘김성근을 만든 건 무수한 시행착오’라고 쓰셨더군요.


🅰️나는 프로 감독이 되고 25년 만에 첫 우승을 했어요. 태평양 돌핀스, 쌍방울 레이더스 같은 꼴찌팀을 주로 맡아 2~3등으로 올려놓곤 했습니다. 나는 늘 이런 벼랑 끝에서 살았어요. 내일 어떤 위기가 닥칠지 모르니 살길을 찾아야 했습니다. 시행착오가 많았다는 것은 결국 실패하지 않았다는 뜻이에요. 그만큼 고민하고 도전하고 결과를 냈으니 ‘시행착오가 많은 인생이야말로 베스트’지요.


3️⃣책에 ‘요즘은 교과서와 참고서가 없는 세상’이라고 썼는데.


🅰️각자 답을 만들어가야 하니까요.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참 대단하고, 한편으로는 포기가 너무 쉬운 것 아닌가 안타까울 때가 있어요.


4️⃣어디서 그런 걸 느끼나요.


🅰️답은 자기한테 있는데 그걸 알면서도 실행하지 못하잖아요. 다음으로 미루거나 남의 아이디어에 기대려고 하죠. 뭐가 막혔다면 당장 이렇게 뚫을까 저렇게 뚫을까 고민하고 시도해야 해요. 야구나 인생이나 ‘져도 그만, 이겨도 그만’이 아닌, ‘왜 졌나, 왜 안 풀렸나’를 연구하면 해결책이 보입니다.


5️⃣경험이 부족한 탓 아닐까요.


🅰️(고개를 흔들며) 부닥치질 않아서 그래요. 일단 부닥쳐야 아이디어가 나옵니다. 인생은 파울볼을 치며 다음 기회를 보는 타자와 같아요.


6️⃣한화이글스 감독을 맡고 김태균 선수에게 ‘너는 3루에서 반쯤 죽었다’고 공개적으로 말한 적이 있지요?


🅰️김태균이든 누구든 이 포지션(자리)이 되면 저 포지션으로도 갈 수 있어요. 여기는 누구 자리다, 이렇게 고착돼 있으면 팀이 옴짝달싹 못 합니다. 반대로 수비 범위가 커지면 그 선수는 앞으로 살아갈 길이 더 넓어지는 거요.


7️⃣한계를 높여나가라는 뜻이군요.


🅰️스스로 한계 속에 들어가 있는 사람은 관짝에서 죽기만 기다리는 것과 같아요. 앞서 가야지 왜 ‘난 이만하면 됐어’ 하면서 뒤처지나요? (스스로 한계를 여러 번 뛰어넘었다고 생각하는지 묻자) 뛰어넘고 말고 그런 문제가 아니에요. 개발하지 않으면 앞으로 못 나간다는 뜻입니다. 만족하는 순간 끝장이에요.


8️⃣한국시리즈에서 마침내 우승했을 때는 어떤 기분이었습니까.


🅰️사람들은 환호했지만 나는 ‘아, 끝났구나’였어요. 기쁘기보단 ‘다음에 뭘 해야 하나’라는 생각부터 합니다. 늘 그랬어요. 8회에 우리가 홈런 쳐서 역전하면 만세 부르고 난리가 납니다. 얻어맞은 쪽에서는 ‘이제 어떻게 공략할까’ 전략을 풀가동 하지요. 그럼 나는 어떻게 막을지 고민해야 합니다. 그 자리에서 홈런에 도취되면 역전패를 당해요.


9️⃣<파울볼’(2015)>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지옥훈련을 견뎌내며 프로 진출을 꿈꾸는 한국 최초 독립구단 고양원더스 선수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그 다큐에서 ‘너희들은 벼랑 끝에 섰고 뒤가 없어. 여기서 떨어지면 죽는 거야’라고 한 말씀도 떠오릅니다.


🅰️내 밑에 들어온 선수들은 다 키워야 해요. 자식과 똑같아요. 엄격하게 대하고 혹독하게 훈련시킵니다. 부족하다고 자식을 버릴 순 없잖습니까. 미래를 만들어줘야죠. 꼴찌를 일등으로 만드는 비법이 뭐냐고들 묻는데, ‘부모의 마음’으로 대하면 됩니다. 좋은 감독이란 사명감을 가지고 결과를 만들고, 선수에게 대가를 돌려주는 사람입니다. 한계를 넘어서면 선수 자신이 그걸 가장 먼저 알아요.


🔟선수들을 보며 느낀 게 있다면.


🅰️50년 넘게 지도자 생활을 하며 무수히 많은 선수를 만났어요. 내가 느낀 거요?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운명도 달라집니다.

김성근 "내 인생은 파울, 파울, 파울...끈질기게 다음 기회 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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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근 "내 인생은 파울, 파울, 파울...끈질기게 다음 기회 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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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3일 오후 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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