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이해하라'는 말이 주는 부정적 영향에 대하여

01 . 혹시 예전에는 별생각 없이 자주 썼던 말인데 어느 순간부터는 덜 사용하게 되는 말이 있으신가요? 뭐 유행이 한풀 꺾여서 더 이상 안 쓰게 될 수도 있지만 그건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이기도 하고, 말하는 습관이나 환경이 달라짐에 따라 왠지 거리를 좀 두게 되는 말들도 존재하지만 그 또한 내 의지로 인해 사용성이 감소하는 단어는 아닐 겁니다.


02 . 살면서 특정한 단어의 쓰임을 고민한다는 건 그 단어가 가진 고유한 뜻보다 누군가에게 어떻게 들릴지를 깊이 있게 생각해 보는데서 출발합니다. 이런 예시가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마치 칼이나 가위처럼 날카로운 도구를 나 혼자 다룰 때는 비교적 적당한 주의만으로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 건넬 때는 한 번 더 조심성이 더해지는 것처럼 말이죠. 서로 주고받는 타이밍이 약간이라도 어긋나거나 상대가 아직 그 사용성에 익숙하지 않다면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03 . 일을 해오는 동안 생긴 습관 중에 하나는 누구에게라도 흘려 내뱉는 말처럼 'OO 님이 이해 좀 해주세요'라는 표현을 쉽게 쓰지 않게 되었다는 겁니다. 심지어 그전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쉽고 편하게 '이해하라'는 말을 한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었죠.

물론 살면서 누군가에게 이해를 구하는 일도 생기고 나 역시 상대를 이해해야 하는 순간들이 부지기수로 많습니다. 하지만 내가 직접 이해를 바라거나 반대로 내가 직접 이해를 하는 것과는 다르게, 상대에게 또 다른 특정 대상을 가리켜 이해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꽤 일방적이고 때로는 무례한 요구이기까지 하죠.


04 . 직접 경험한 것도 있고 간접 경험한 것도 있지만 사건의(?) 케이스들은 대부분 이랬습니다. A,B,C라는 세 사람이 있다면 보통 A가 B에게 문제를 제기하거나 개선을 요구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A는 C에게 사정 혹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본인이 이 사실을 이슈로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뾰족한 대책을 마련해 줄 수도 없다 보니 문제를 다시 B에게로 돌려보내는 겁니다. 바로 '네가 좀 이해해라. C에게도 그만한 사정이 있을 거다'라는 말과 함께 말이죠.


05 . 특히 이 과정에서 A가 B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경우라면 문제는 더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 문제를 덮고 돌려보내는 것 자체도 좋지 않은 상황을 야기하지만 그보다 더 나쁜 건 B로 하여금 '내가 이해를 하면 되는 문제인 거구나'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때문이죠. 그때부터는 누군가를 '이해하라'는 말이 매우 강압적인 표현이 될 수도 있음이 분명합니다.


06 .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섣불리 '이해하라'는 말을 꺼내기에 앞서 상대가 스스로 어떻게 문제를 받아들이고 있고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대화를 이어가려 합니다. 즉, 'OO 님이 생각하시기엔 지금 상황에서 제일 큰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라든가 '혹시 저에게 말씀하시기 전까지 어떤 부분들이 제일 고민이 되었나요?' 같은 질문을 하려고 하거든요. 그럼 많은 경우 스스로가 생각한 문제나 스스로가 해온 노력들을 직접 말로 표현하면서 생각을 더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케이스가 많았습니다.


07 . 이렇다 보니 이제는 누군가가 고민을 얘기하거나 의견을 개진하려고 할 때 일단 무턱대고 '이해'부터 내세우고 요구하는 사례가 더 눈에 잘 띕니다.

"아니에요.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OO 님도 좋게 좋게 받아들이세요. 아예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우리가 그 정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잖아요."

아마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 중에도 이런 표현의 말들을 들어본 분이 적지 않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만큼 우리 모두 크게 의식하지 않고 일상 속에 퍼뜨리는 말 중에 하나니까요.


08 . 하지만 '이해하라'는 말은 상대에게 정확한 범위도, 역할도, 방법도, 효과도 규정하지 않은 채로 문제 자체를 무효화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물론 타인과 관계를 맺어가야 하는 입장에서 누군가를 더 깊고 넓게 이해하는 데서 오는 긍정적인 점들이 많다는 건 당연히 잘 알고 있지만, 매사 타인에게 '이해하고 보라'는 식의 주문은 그리 적절해 보이지 않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09 .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히 속 좁은 사람처럼 보일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된다면 '이해하라'는 말을 이렇게 한번 사용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일을 같이하는 입장이라면 '우리가 C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라며 문제의식 자체를 공통의 어젠다로 등록하는 방법도 있고, 일반적인 사이에서는 '혹시 우리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으려나?'처럼 '충분히 헤아려봤음에도 쉽게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 존재하는지'를 셀프 체크하는 방법도 있거든요. 저는 이게 '이해'라는 단어를 제대로 사용하는 현명한 가이드라고도 생각합니다.


10 . 파나소닉의 창업자이자 국내의 많은 독자들에게도 경영의 귀재로 알려져 있는 마쓰시타 고노스케 옹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만사가 잘 진행되게 하려면 누구에게 어떤 말을 해주는가가 기본이다. 적절한 말이 올바르게 쓰일 때 일도 사람도 성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이해'라는 단어도 그렇게 쓰였으면 합니다. '적절하고 올바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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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14일 오후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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