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익 "늦게 핀 꽃이 오래가요... 3년만 최선을 다하면 못할게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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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나온 삶을 이력서로 쓸 때 15가지 직업을 나열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보험 외판원, 인쇄소, 가구점 총무, 전자회사 종업원, 독서실 매니저, 과일 노점상, 카센터 직원 등 <찔레꽃>, <꽃구경>으로 유명한 가수 장사익의 커리어다.
2. 가수 장사익은 이미자와 콘서트를 하고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애국가를 부를 정도로 한국을 대표하는 가수. 1949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난 그는 선린상고를 졸업하고 나서 가수가 되기 전에 숱한 직업을 전전했다. 1년도 못 채우고 잘리거나 그만둔 경우도 있었다.
3. 그렇게 그는 45세에 가수로 데뷔했다. 올해로 노래 인생 30년. 인생의 모퉁이를 돌고 돌아 (마침내) 천직을 찾은 셈이다.
4. 감회를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데뷔 10주년에 세종문화회관에서 ‘10년이 하루’라는 제목으로 공연을 했는데요. 지난 30년이 꼭 사흘 같네요”
5. “힘들고 넘어지고 깨지기도 했지만 그 좌절과 방황의 시간이 쌓여 저를 일으켜준 것 같아요. 제가 부르는 노래는 뜨거운 세월 다 보내고 들판에 핀 가을꽃입니다. 지나온 인생의 굽이굽이가 다 감사해요”
6. “젊을 땐 객기가 있었어요. 상고 졸업하고 보험사 외판원을 하며 3년간 서울 낙원상가 근처에 있는 가수학원에 다녔습니다. 현실에 치여 직업을 (이리저리) 옮겨 다녔지만, 언젠가 노래를 하고 싶다는 그 씨앗 하나는 버리지 않았어요. 꿈이 있었기에 시간을 쪼개 악기를 배웠고요”
7. “(그렇게 45살에 첫 무대에 올랐어요) 1994년 11월 홍대 앞 100석짜리 소극장이 생생해요. 400명씩 들어와 미어터졌지요. 평생 처음으로 목돈을 만졌어요”
8. “말도 안 되는 촌놈이 국악도 가요도 재즈도 아닌 노래를 하는데 신기하고 재밌단 말이에요. 출시되자마자 히트한 상품처럼 제가 막 불려다녔어요. 한 달 만에 누가 ‘공짜로 음반 내주겠다’고 해서 1집이 나왔는데 사기도 당했죠. 하하”
9. “(저는 가수가 되기 전에 고생을 많이 했는데, 그 경험 중에) 버릴 게 하나도 없어요. 요즘 가수들은 10대에 연습생을 시작해 30대가 되면 은퇴하잖아요? 그들이 데뷔한 다음에 인생을 배운다면 저는 거꾸로예요”
10. “인생을 (먼저) 배우고 나서, 쓰러져도 일어설 힘을 비축하고 나서, 가수가 된 겁니다. 노래도 일종의 이야기잖아요. 저는 몸으로 겪은 희로애락에 대해 젊은 가수들보다 더 많은 이야기, 더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어요”
11. “저는 하찮은 유행가를 부르는데, (제 노래를 들으면) 다들 눈물을 펑펑 터뜨립니다. 그때는 진심인 것 같아요”
12. “(그래서인지) 울고 싶어 장사익 공연에 온다는 분도 많아요. 나 대신 슬퍼하는 가수가 그곳에 있으니 덩달아 우는 거예요. 비 온 뒤에 세상이 맑아지듯 나올 땐 개운해져요”
13. “제 얼굴을 보고 있으면 자기네 아버지 같은지 괜히 울고 싶어진대요, 하하. 좋은 의미로요. 그렇게 사람들을 위로해요”
14. “부끄럽게도 저는 15개 직업을 갈아타면서 살았지만, 노래는 30년을 꾸준히, 쉬지 않고 해 왔습니다. 가수는, 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때 찾아온 직업입니다. 그래서 노래할 때마다 최선을 다해요. 정성껏 불러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노래는 제 운명입니다”
15. “(마지막으로, 사실 제가) 이렇게 웃기 시작한 것은 노래를 부른 다음부터예요. 복이 와서 웃는 게 아니라, 웃다 보니 복이 온 것이죠. 웃는 게 먼저요, 진리입니다. (그래서) 웃지 않는 저의 얼굴은 이제 낯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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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17일 오전 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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