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널리티] K-파이오니어ㅣ 박진영이 꿈꾸는 K팝의 새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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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JYP의 전신은 1997년 설립된 ‘태흥기획’이다. 박진영의 이름에서 따온 JYP라는 현재의 사명은 2001년 변경됐다.
2. 이후 god, 비의 음반 프로듀싱을 성공시키며 JYP는 메이저 기획사로 떠올랐다. 이후에는 아이돌 제작에 초점을 맞춰 원더걸스, 2PM, 2AM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아이돌 그룹을 제작 중이다.
3. 현재 JYP라 하면 많이 떠올리는 '걸그룹 명가'라는 이미지는 그룹 원더걸스로부터 시작됐다.
4. (다만) 계속 승승장구할 줄 알았던 JYP는 미국 진출을 꿈꾸던 박진영으로 인해 크게 흔들렸다. 그전에도 미국 진출을 추진했던 박진영은 원더걸스를 (아예) 미국으로 데려가 본격적으로 미국 진출에 나섰다. 국내 활동을 한동안 중단할 정도로 총력을 기울였지만 초반에만 반짝했을 뿐 결과적으로는 실패였다.
5. 세계 금융 위기라는 특별한 사건도 있었지만, 박진영의 무리함 역시 많은 비판을 받았다. '미국병'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게 된 것은 덤이다.
6. 휘청거리며 무너질 수도 있었지만, JYP는 버텨냈다. (이때) 핵심은 (회사 경영에서) 박진영의 영향력을 줄이는 것이었다.
7. 1인 중심 체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JYP는 다양한 하위 레이블도 만들었고 원활한 노래 수급을 위해 JYP 퍼블리싱도 설립했다.
8. 이수만 전 SM 총괄 프로듀서가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불명예스럽게 밀려나고,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는 양현석 YG 총괄 프로듀서가 팬들의 호불호 속에 그룹을 프로듀싱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모든 걸 내려놓고 영향력을 줄인 박진영의 선택은 그야말로 현명했다고 볼 수 있다.
9. 박진영의 과감한 선택으로 인해 JYP는 위기를 딛고 반등에 성공할 수 있었다.
10. (그리고 박진영의 그늘에서 벗어난 첫 번째 그룹인 트와이스가 성공하며 회사로서 JYP의 체질은 완전히 바뀌었다)
11. 박진영은 이렇게 말했다. "첫 실험(트와이스)의 결과는 엄청났다. 업무가 빨라지고 효율적으로 됐다. 담당자와 아티스트의 커뮤니케이션도 훨씬 원활히 이뤄졌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이 하나의 회사 안에 4개의 작은 회사를 세우기로 한 것이다"
12.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한 JYP는 꾸준하게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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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11일 오후 1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