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일피일 미루다 두 계절이 지나서야 한의원에 다녀왔다. 한 일을 오래 하다 보면 경력과 노하우만 쌓이는 게 아니다. 직업병도 찰싹 달라붙는다. 일의 강도나 컨디션에 따라 경중에 차이가 있어 웬만해서는 그냥저냥 버티고 살게 된다. 목조각을 하는 내 경우 만성염증 탓에 손이 자주 화끈거리는데, 일주일에 두어 번은 얼음찜질로 열을 식히고 틈만 나면 뻣뻣한 손가락을 주무른다. 지문이 남아나질 않아 휴대전화 잠금화면을 단번에 풀지 못하는 불편함도 있다.
한의사 선생님은 짧고 가는 침을 손허리뼈 사이에 가지런히 꽂아두고 당분간 무리해서 손을 쓰지 말라고 말했다. 입 밖으로 나오는 대답과는 정반대로 머릿속은 하다만 작업의 다음 순서를 부지런히 그려냈다. 그의 조언을 따르겠다는 마음은 참으로 가벼웠으니 근질거리는 몸을 참아 볼 생각도 않고 곧장 작업실로 달려가 조각도를 손에 쥐었다. 손등 위로 푸르뎅뎅한 멍이 수채화 물감처럼 번져서 안 그래도 거칠고 투박한 손이 더욱 볼품없어 보였다. 그런데 그게 참 이상하게도 좋았다. 호흡처럼 자연스러워 멈추기를 모르는 몸짓은 충만과 결핍이 불러낸 의지와 어우러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몰입을 선사했고, 두 손은 그 과정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다. 육신의 끄트머리에 새겨진 존재의 흔적이 이토록 예쁘고 애틋할 수가 없었다.
그날부터 노동이 육체에 남긴 상흔을 달리 바라보게 됐다. 토슈즈에 싸인 발레리나의 발, 단단한 현을 누르는 기타리스트의 손끝, 마라토너의 물집투성이 발가락은 그들의 노력과 끈기가 응축된 흔적이며 자신을 넘어 경지에 다가간 결정체였다. 그들의 진심 어린 열망, 그 과정에서 겪어낸 아픔과 인내가 몸에 온전히 기록돼 있다는 사실에 나는 깊이 감동했다. 그들처럼 내게도 영광의 굳은살이 돋아나는 거라면 기쁜 마음으로 달갑게 맞이하고 싶다. 충실하게 새겨넣은 삶의 자취를 두 손 가득 움켜쥐련다.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1725326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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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8일 오전 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