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사회적 사슬, 신뢰》

2024년을 가만히 회고하기 위해 멜버른을 찾았습니다. 10일간 머문 멜버른에서는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었고, 20시가 되더라도 여전히 밝은 도심은 거닐기 좋았습니다. 38도까지 치솟은 날씨는 갑자기 10도까지 떨어지면서 "멜버른에서는 하루에 4계절을 모두 경험할 수 있다"라는 말이 저절로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기 전 다시 한번 제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슬픈 소식이 들렸습니다. 한국에서 일어난 가장 큰 항공기 사고로 많은 사람들이 슬픔에 빠졌고 그 소식을 들은 상태로 인천공항에 도착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2024년 회고는 혼자만의 기록으로 남겨두기로 했습니다. 대신, 함께 읽고 싶은 박상현 작가님 글을 공유합니다. 슬픔을 함께 나누는 것은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해야 하는 당연한 일이라고 믿으며, 상식이라고 믿었던 것의 취약성을 여실히 느낍니다.


[ 큐레이터의 문장 🎒 ]


이런 대형사고가 날 때마다 우리의 삶이 얼굴 모르는 타인들에 대한 거의 전적인 신뢰 위에서 유지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승객들은 만나본 적 없는 조종사들이 충분한 휴식을 하고 신중하게 운항할 거라고 믿고, 조종사들은 자기가 직접 확인할 수 없는 구석구석을 정비사가 제대로 정비했을 거라고 믿고, 정비사들은 매뉴얼을 건네준 제조사가 제대로 설계, 제조했을 거라고 믿고, 제조사는 운항사와 공항이 제대로 정비, 관제할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사고가 발생하면 우리 모두는 안전당국이 원인을 철저하게 규명해서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을 거라고 믿는, 길고 거대한 신뢰의 사슬에 의지한다. 우리가 지금 먹고, 숨 쉬고, 이동하며 일상을 사는 건 누군가의 죽음으로 사슬이 고쳐지고 유지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군가 사고로 목숨을 잃는 건 궁극적으로 살아있는 사람들, 태어날 사람들을 위한 희생이다. 그분들 때문에 우리가 살아있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연결되어 있고, 돌아가신 분들은 얼굴은 모르지만 남이 아니다.


https://redbusbagman.com/boundtoge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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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31일 오후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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