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잘한 잽 여러방이 쌓여서 K.O가 되기도 한다

엄청난 파워의 스트레이트 훅 한방에 K.O가 되기도 하지만 자잘한 잽 여러방이 쌓여서 임계치가 넘어가면 K.O가 되기도 한다. 최근 지속적으로 조짐은 있었지만 이번주 정말 아무것도 안해도 더 아무것도 안하고 싶은 모든 것이 귀찮은 무기력증이 제대로 왔다.


나는 자타공인하는 심각한 아드레날린 중독자다. 내 삶의 활력과 원동력의 근간이 아드레날린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드레날린이 주는 고통과 쾌감을 즐긴다.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고 특별히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고 모든 면에서 특별히 잘난 것도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지금까지 내 유일한 강점으로 삼고 살아내고 있는 근본은 목표를 정하고 나면 오랜시간 걸려도 꾸준히 노력하는 끈기와 크고 작은 물리적, 정신적 충격을 잘 버텨내는 맷집이다. 시간과 노력과의 지리한 싸움에서 결국 해냈을 때 분비되는 아드레날린은 과장해서 내 존재 이유다.


그런데 작년 12월 계엄 사태 이후 반년 가까이 다양하고 많은 자잘한 잽 펀치들을 계속 맞다보니 모르는 사이 꽤나 내상이 깊었던 것 같다. 듣기 싫은 보기 싫은 정치 이야기들과 급격히 휘몰아치면서 변화하지만 어디로 갈 지 장담할 수 없는 경제와 산업, 시장 상황들, 거기에 당장 사업과 일을 할 때 있어서 한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불안하고 갑갑한 상황에 대한 단편들, 그리고 이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계속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다양한 시도를 했음에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성과들 혹은 성과의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결과가 왜 그렇게 나왔는지 도무지 분석되지가 않는 당혹스러운 상황들까지 나를 완전히 지치게 만들어온 것 같다. 지난 몇년간 가끔씩 겪었던 무기력증과는 결이 다르다. 지금까지는 일이 너무 많아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에너지가 바닥이 나서온 번아웃이었고, 지금은 예전보다 훨씬 더 건강해졌지만 머리 속은 완전히 뒤엉켜 멘탈이 바사삭 깨진 느낌이다.


내 삶 전체적으로는 정치와 경제 상황상 올해 얼마나 힘들지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대비해왔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일, 생활 유지 목적으로 입에 풀칠하고 현금흐름상 문제가 없도록 만드는 일을 위해 지난 몇년 사업과 일에만 집중해온 것과 달리 거기에 세테크와 투자까지 신경써서 돈문제가 안생기도록 만들었다. 월급받으며 사는 직장인들은 이해도 공감도 어렵겠지만, 직장 그만 두면 얼마나 많은 버는지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현금흐름을 일정하게 유지하느냐가 먼저 해결해야할 문제이자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느끼게 된다. 아무튼 사업, 일, 세테크, 투자, 4개 축을 골고루 신경쓰면서 생활에 문제 없도록 올해 수입포트폴리오로 구성하고 실행해왔다. 다행히도 어떻게 상황이 벌어질 지 예상한대로 움직여서 일, 세테크, 투자는 원하는대로 해내고 있다. 세테크와 투자는 현금화와 재투자를 계획하고 목표한대로 해냈고, 일은 스타트업과 대기업 뿐 아니라 몇년전부터 조금씩 비중을 높여가며 로컬 비즈니스와 창업, AI와 딥테크까지 발을 넓혀놓은 덕분에 다행히도 작년 수준은 유지중이며 남은 올해도 최소 그렇게 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사업이다. 정치와 경제 불안이 소비 심리에 치명타를 입히고 나니 최소한 우리회사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한해서는 대기업과 중견기업 등 B2B 시장도 그렇고 일반 성인 대상 B2C 시장도 확연히 지갑을 닫았다. 차라리 우리 말고 다른 곳들이 가져갔다고 하면 경쟁에서 밀린거니 반성하고 다시 준비해서 싸우면 되는데 여기저기 이야기를 나눠봐도 우리 대신 가져간 곳들이 없다. B2B는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불확실성이 높다보니 돈이 있어도 상반기내내 최대한 가만히 있던 것 같고, B2C는 정말 점점 더 돈이 없다보니 소비를 최소화하는 과정에서 시장 자체가 줄어든 것 같다. 반년동안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있는데도 속이 뻥 뚫릴 정도로 쾌감을 불러일으켜 아드레날린 폭발시킨 일은 매우 적었다.


그 사이 사업에서 충족되지 않았던 아드레날린을 세테크와 투자로 채우고 일을 안정적으로 가져가면서 멘탈을 지켜냈지만, 지난주로 아드레날린 공급해온 것들이 끝나고 정리되면서 이 둘은 9월까지 신경쓸 일이 없다보니 갑작스럽게 다가온 아드레날린 결핍에 그동안 수없이 맞은 잔펀치들의 정신적 내상이 겹치면서 멘탈이 나가고 무기력증이 온 것 같다. 사업과 일의 B2B 부분은 이제 새정부가 들어섰으니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환경과 상황이 어떻게 될 지 지켜보면 명확해질 것 같고 당장 근래 분위기만 봐도 확실히 나아질 것 같다. B2C는 돈 되는 건 뭔지 확실히 보이는데 우리가 그 몇몇 소수로 급격히 추려진 키워드 중심의 대세를 타기엔 영역이 너무 다르다. 반년간 계속 접점을 찾는 작업을 해왔는데 Product-Market-Fit까지는 왔지만 Key-Buying-Factor까지는 먼 것 같다.


갑갑한 마음에 오랜만에 이렇게 길게 주저리 주저리 떠들고 보니 4개 축 중 하나만 내 욕심을 채울만큼 잘 안풀린거였다. 그 한개가 머리와 마음을 어지럽게 만들었는데, 하나 빼고 나머지 3개가 잘 풀리거나 순항 중이라는 건 결국 내 입장에서 전체적으로는 최소 평균 이상으로 잘 해내고 있다는 의미가 아닌가 싶다. 또 모두 다 가질려고 과욕을 부린 것 같다. 욕심이 눈앞을 가리니 이미 가진게 안보였던 듯하다. 또 이렇게 글로 풀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계속 머리 쓰고 신경을 썼으니 아드레날린을 떠나 귀차니즘과 무기력증이 온 것도 당연하다. 최선을 다해서 노력을 했었으니 이젠 모두 하늘의 뜻이요, 아예 마음 편하게 먹고 사업은 해야만 하는 확정된 일 이외에는 당분간 거리를 조금 둬야겠다. 바사삭 깨진 멘탈이 다시 붙을 때까지 아드레날린 쾌감은 포기하고 심심하게 쉬고 놀아야겠다. 귀차니즘과 무기력증이 다른 축들과 일상생활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게 무엇보다도 가장 심각한 문제기 때문이다. 당분간 억지로 뭔가 만들어내려고 노력하기 보단 상황과 흐름에 그저 몸을 맡기도록 한다. 이왕 온 참에 귀차니즘과 무기력증 자체도 즐기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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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14일 오전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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