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의 책과 지성] 누가 뒤통수를 치거든 경험이 하나 늘었다고 생각하라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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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에 아주 야비하고 어이없는 일을 당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거나 짜증내지 마라. 그냥 지식이 하나 늘었다고 생각하라. 인간의 성격을 공부해가던 중에 고려해야 할 요소가 새로 하나 나타난 것뿐이다. 우연히 아주 특이한 광물 표본을 손에 넣은 광물학자와 같은 태도를 취하라.” 현대판 마키아벨리라 불리는 로버트 그린의 책 <인간 본성의 법칙>은 쇼펜하우어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인간은 이기적이다. 그래서 타인은 지옥이다. 하지만 인간은 인간이 없는 곳으로 도망치지는 못한다. 왜냐고? 타인과 눈을 맞추지 못하면 우리는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싫든 좋든 인간은 섞여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래서 그린은 “인간이 이성적이라는 헛된 낭설과 이별하라”고 말한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비이성적이다. 인간은 욕망과 감정의 지배를 받는 이기적 동물이다. 생존이라는 대전제 아래 500만년 동안 진화한 결과다.
군대 시절, 박사 학위까지 받은 사람이 숨겨놓은 과자를 조교에게 빼앗기고 서럽게 울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사이좋던 이웃 남매가 몇 푼 안 되는 아버지의 유산을 놓고 원수처럼 소송을 벌이는 것을 본 적도 있다. 인간은 그런 존재다. 그러니 어쩌랴. 우리는 그런 인간들 사이에서 살아가야 한다.
캘리포니아대와 위스콘신대에서 고전학을 전공했고 할리우드에서 스토리 작가로 일한 그린은 역사 속 인물과 사건에서 인간의 본성을 찾아내 현대에 대입한다. 그는 인간관계를 지배하는 욕망과 권력을 추구하는 인간 심리를 다루는 데 독보적이다.
그린이 제시하는 인간들과 어울려 잘 살아가는 해법은 간단하다. 그는 인간이 가진 연극적 요소를 인정하라고 말한다. 인간은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있느냐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는 동물이다. 심지어 같이 있는 사람이 몇 명이냐, 남자냐 여자냐, 키가 크냐, 뭐 이런 것들에 따라서도 행동이 달라진다.
“누가 역할 놀이를 하거나 가면을 쓴다고 해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거나 격분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목표는 삶이라는 무대에서 내가 맡은 역할을 완벽한 기술로 연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의 겉모습을 실제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맞다. 인간은 연기자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내가 원하는 것을 부모에게서 얻기 위해 동정심이나 애정을 유발하는 표정을 짓는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감정이나 생각을 숨기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익히며, 원하는 무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하는지 금방 알아챈다.
그렇다면 그린은 왜 이렇게까지 인간의 민낯을 파헤칠까? 그는 “인간 본성의 법칙을 알면 삶에 대해 겸손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나와 남의 그러한 본성을 인정하고 서로 같이 어울려 살 수밖에 없다는 걸 겸손하게 인정할 때, 그나마 행복에 가까워진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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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24일 오전 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