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업계의 화두가 있는 메타버스와 버추얼 셀럽, AI 챗봇(이루다 등)을 보다 보면 생각나는 소설이 하나 있다. 2010년에 출간된 테드 창의 중편,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이하 소객생)'이다. IT 전문서같은 이름을 달고 있지만 실상은 굉장히 몰입도 높고 인간적인 픽션이다. 물론 주 소재는 IT가 맞다. 주인공이 메타버스에서 디지털 펫을 키우는 내용인지라. 이 책에 등장하는 메타버스는 책의 줄거리에 따라 현실에 가까워질 정도로 고도화되고, 그 안의 디지털 펫은 상당한 자유도로 학습시킬 수 있다. 요즘은 이런 소재가 너무나 흔하게 느껴지고 자연스럽겠지만 이 책의 출간은 2010년. 딥러닝이 화려한 부활을 알린 2015년보다 5년 전에 나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된다. 보통 이 정도의 기술이 현실화되었다고 할 때 헐리웃 블록버스터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디스토피아적 줄거리와 인간-로봇 갈등 구조를 떠올리기 쉽지만, 네뷸라상과 휴고 상을 밥먹듯이 수상한 작가 테드 창은 마치 20년 뒤 미래를 내다본 양 상상의 단계를 몇 단계 뛰어넘었다. 지금도 이 책 안에서 떠오르는 대표적인 에피소드가 몇 가지 있다. - 메타버스의 셧다운, 그리고 그 여파: 주인공 일행이 디지털 펫을 키우던 메타버스는 다른 서비스의 출시와 함께 몰락하고 유저들은 새로운 서비스로 대부분 이주한다. 다만 기존의 메타버스에서 디지털 펫과 큰 애착을 가지고 있던 주인공은 뜻이 맞는 커뮤니티와 함께 기금을 모아 기존 메타버스의 서버 인스턴스를 되살려 운영하지만, 북적이던 옛날과 달리 영혼 없는 NPC만 가득한 세계에서 주인공 일행의 디지털 펫들은 고립감을 느끼고 주인공 역시 안타까워한다. 새로운 서비스로 디지털 펫을 이주시키면 되지 않는가? 라고 묻겠지만, 기술 표준이 다른 탓에 디지털 펫을 이주시키는 개발 작업은 상당한 비용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이 때, 디지털 펫을 이주시키기 위한 개발 작업을 제안하는 회사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 회사가 원하는 것은 이를 대가로 한 디지털 펫의 상업적 사용이었다. 주인공은 부모의 마음으로 이 제안에 거부감을 가지지만, 디지털 펫은 자기 결정권을 주장하기 시작하는데 ... - 디지털 인격의 자기결정권: 디지털 펫은 수 년간의 학습을 통해 인간 아이와 유사한 수준으로 사고하고 행동하지만, 여전히 소설 내의 세계에서 디지털 펫에게는 법적 인격권이 없고 보호받을 수 없는 존재이다. 자기 결정권을 주장한다 해도 그 행동에 책임을 질 수도, 보호를 받을 수도 없다. 그런데 주인공의 디지털 펫은 정보를 검색하던 중 이를 극복하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을 찾아낸다. 바로 스스로를 법인격화(법인화)하는 것. 이를 알게 된 디지털 펫은 주인공에게 법인을 만들어달라고 조르기 시작하고, 주인공은 심각한 번민에 빠져드는데 ...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 독자는 방금 읽은 책이 공상과학 소설인지, 아니면 휴먼 다큐 육아물인지 혼란스러운 지경에 이르게 된다. 확실한 건 이 책의 내용을 실생활에서 고민하게 될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이고, 머신러닝 모델을 만드는 엔터프라이즈가 가장 먼저 이 고민을 시작하게 될 것이라는 점.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Naver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2021년 1월 14일 오전 12:25

댓글 0

주간 인기 TOP 10

지난주 커리어리에서 인기 있던 게시물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