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역사가 퇴장합니다. 2016년 3월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세기의 대결은 한국에서 열렸습니다. 그때 대국장이 있던 광화문 호텔로 갈 때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구글의 글로벌 행사가 한국에서 열렸다는 것은 한국 기자들이 편하게 취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외신들은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올 떄 한국 기자들은 버스나 택시로 대국장에 갈 수 있었으니까요. 역시 힘이 있어야 하는구나라는 어설픈 애국심이 막 솟았던 기억이 납니다.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 모습을 기자들은 큰 프레스룸에서 지켜봤습니다. 바둑을 모르는 기자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저도 대국을 설명해주는 프로 기사의 이야기를 들은 후에야 머리를 끄덕였습니다. 첫 번째 게임에서 이 9단이 졌을 때는 '그럴 수도 있다'는 분위기가 프레스룸에 흘렀습니다. 대국이 끝난 후에도 프레스룸의 분위기는 그리 침통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두 번째 대국마저 졌을 때 프레스품은 고요했습니다. 기자들의 얼굴은 뭔가로 머리를 얻어맞았을 때처럼 멍했습니다. 노트북 자판 소리만 많이 났습니다. 세 번째 대국에서 이세돌 9단이 또 졌을 때 무거운 침묵이 프레스룸에 흘렀습니다. 바둑에서만큼은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길 수 없다는 게 정설이었는데, 그게 깨진 것을 실감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은 인간의 허무한 패배로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네 번째 대국에서 흔히 말하는 이세돌 9단의 '신의 한 수' 이후 프레스룸의 분위기는 달아올랐습니다. 설명을 담당했던 프로 기사는 알파고가 뭔가 이상하다고 말했습니다. 이 9단이 이길 것 같았습니다. 이세돌 9단의 승리가 확정됐을 때 프레스룸은 국내외 기자들의 박수로 가득 찼습니다. 뭐랄까요? 감동스러웠고, 아직은 인공지능보다 인간이 뛰어날 수 있다는 묘한 안도감 등의 복잡한 감정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눈물이 왈칵 날 정도로 이 9단의 승리는 특별했습니다. 마지막 게임의 승패 여부는 이미 관심 밖이었습니다. 그래도 1승을 올렸다는 것에 대한 기쁨이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대국은 예상대로 알파고가 이겼습니다. 그래도 프레스룸은 침통하거나 그러지 않았습니다. 이세돌 9단의 1승은 그렇게 기자들에게도 많은 위안을 줬습니다. 그렇게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은 여러 가지 이야깃거리를 남긴 세기의 대결이었습니다. 이제 이세돌 9단이 은퇴를 합니다. 독특한 캐릭터,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는 당돌함을 보여줬던 사범입니다. 오래전 이 사범을 만났을 때 나이를 떠나 당돌하게 보이는 모습에 당황했습니다. 바둑을 잘 모른다는 것까지 겹쳐 기자는 이 사범 앞에서 기가 죽었습니다. 이세돌 9단이 은퇴를 결정했습니다. 은퇴 길에 또 한 번의 이벤트를 여네요. 2017년 12월 NHN이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입니다. 지난 8월 세계 AI 바둑대회에서 3위를 차지했다고 하니, 이세돌 9단의 승리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딥러닝 방식의 인공지능 바둑을 뛰어넘는 것은 어렵다는 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젠 이번 대국을 마음 편하게 지켜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전히 바둑은 모르지만 응원하겠습니다. 이세돌 사범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알파고를 상대로 1승을 올렸을 때 마음속으로 감동했다는 말 전해주고 싶습니다. 이 사범이 자신의 미래를 어떻게 그려갈지 궁금합니다.

'알파고'에 1승 이세돌 9단, 이번엔 '한돌'과 대결

경향신문

'알파고'에 1승 이세돌 9단, 이번엔 '한돌'과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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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3일 오전 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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