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글서글한 디자인>
“모든 것이 디자인은 아니다. 그러나 디자인은 모든 것과 관련 있다.”
— 디자인으로 세상을 배웁니다.
* 직장인들의 야근 고민, 아니 야근 고통.
디자인 직군은 전통적으로(?) 야근이 많습니다. 야근을 많이 하게 되는데 일을 못해서 일까요? 아니요.
일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디자인은 프로세스의 후단에 위치하다 보니 앞단의 전략기획과 실행계획이 정교하지 못하면, 숭숭숭 뚫려 있는 허술한 구멍들이 디자인 단계에 와서는 눈덩이처럼 커져 프로젝트 자체가 되냐 못되냐 할 정도의 결정적 결함들이 뒤늦게 드러나게 됩니다. 초기 계획에서의 허점들이 앞단에서 시간 다 소진하고 이미 돌이키기 힘든 지점에서 몇 배로 드러나 후단으로 갈수록 엉키게 됩니다. 이를 디자인팀이 메꾸기까지 하면서 디자인 퀄리티를 고도화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해 디자인팀은 어떻게든 프로젝트 결과를 만들기 위해 도저히 물리적으로 야근이 불가피해지는 상황에 봉착하게 됩니다.
그렇게 디자이너를 “갈아서” 데드라인 맞추고 의사결정을 최대한 빨리 받으려면 고퀄리티 시안 후보군을 한 두개도 아닌 수 개씩 만들어 “한 개”를 컨펌 받습니다. 기획에서의 일정관리 실패를 커버하면서 촉박한 일정내 수 개의 디자인 퀄리티를 도출하는 과정이 얼마나 정밀해야 가능할 것 같은가요?
디자인은 젠체하기 좋은 분야입니다.
우리가 에어컨의 매커니즘은 잘 모르지만 제습은 어떻고, 냉방, 송풍 정도는 대략 알고 있어 원하는대로 리모콘의 버튼만 누르면 그 기능이 켜집니다.
디자인의 세계는 잘 모르지만 눈으로 바로 보여지는 것들 정도는 내가 느낀대로 대강 말하면 더 나은 결과물이 바로 만들어질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략의 정교함이나 일정관리의 실패는 생각하지 못하고 현재 진행 단계에 적절하지 않은 “아름다운” 말들이 오가게 됩니다. 디자이너도 그 아름다움을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다만 그 아름다움을 말하기 전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이미 디자이너를 갈아 넣었다는 것과 또 다른 아름다움을 위해서는 또 다시 디자이너를 갈아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디자인직군이 야근이 많은 이유 중 하나입니다.
일주일 안에 집을 지으라면 벽돌이나 특별한 소재, 규모는 포기하고 일반적인 소재와 규격화된 형태 및 규모를 합리적으로 계획하되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일주일 안에 자작나무 소재로 거주자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한 형태의 집을 최선을 다해 짓느라 야근을 하는 게 디자이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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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모두가 프로가 되는 것이 야근 문화 혹은 야근 구조를 개선해 나가는 시작점이라 생각입니다. 프로란 뭔가요? 자기 업에 정점을 향해 끊임없이 (남이 아닌) 자신을 “담금질”하는 직업인이라 생각합니다.
나를 담금질 하는 일에 소홀히 하면 내 역량이 떨어지는 게 문제가 아니라 결국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직장생활의 발란스를 깨트리고 건강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게 문제입니다. 행여 그런 사람이 리더라도 된다면… 회사와 조직원들에게 불행을 안겨주는 리더가 되고 맙니다.
저는 행복의 조건에 일이 포함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창의적인 사람들은 별나고 튀는 사람들이 아니라 일을 통해 가치를 생산하는 데 몰입된 사람들이라 생각합니다. 열정적인 사람들은 열심히 말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행동하고 결과를 보여주는 사람들이라 생각합니다. 그 과정이 일이고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사람의 자연스러운 바이오리듬을 해치면서까지 창의와 열정을 쏟는 일은 칭찬 받을 일이 아니라 행복에서 멀어지는 일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