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베이징 올림픽.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마이클 펠프스를 응원하기 위해 수영장을 찾았다. 그리고 성조기를 들고 응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부시 대통령은 국기를 거꾸로 들었다. 언론 보도 사진을 보면 그가 흔드는 성조기는 앞뒤가 바뀌어 있다. 성조기의 정면이 대통령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응원이라는 것이 선수에게 힘을 주기 위해 하는 것임에도 부시 대통령은 선수의 시점이 아니라 자기 시점에서 국기를 들었다. 수영장에 와 있는 미국인 응원단 중 오직 부시만 그랬다. 이 장면은 언론을 통해 전 세계로 타전됐다.
애덤 갈린스키교수는 왜 부시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실험을 했다. 실험 참가자를 두 그룹으로 나눠 한 쪽에는 과거에 권력을 휘두르던 때를 상기하게 했다. 권력을 휘두르던 때란, 점수를 매기거나 성과를 평가하는 것처럼 타인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힘을 가졌던 때를 말한다. 그 경험을 떠올리고 글로 상세히 서술하라고 했다.
또 다른 그룹에게는 반대의 경험을 떠올리라고 했다. 권력 아래 놓여있던 그 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떤 느낌이었는지를 글로 쓰라고 했다. 그 후에 굵은 펜으로 각자의 이마에 대문자 E를 쓰게 했다.
두 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자기 관점에서 E를 써서 다른 사람에게는 E의 좌우가 반대로 보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 관점을 고려해 E가 제대로 보이게 쓸 수도 있다.
예상대로 권력을 행사했던 경험을 떠올린 그룹에서는 부시처럼 자기 관점에서 E자를 쓴 사람이 많았다. 반면 권력 아래 놓였던 경험을 떠올린 그룹에서는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E자를 쓴 사람이 많았다.
갈린스키 교수는 권력이 우리 뇌를 변화시킨다고 말한다. 갈린스키 교수의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권력에 관한 아주 사소한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이런 자극을 받았다. 실제 권력의 영향력은 이보다 훨씬 크다.
문제는 권력의 영향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익숙해진다는 데 있다. 권위주의를 싫어하던 사람도 자기도 모르게 그 달콤한 맛에 익숙해질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이 언제 꼰대가 됐는지 스스로 판단할 수 없다.
좋아하는 작가이자 전직 기자의 페이스북에서 가져온 우화 같은 글을 소개한다. 아마 우리에게 권력이 생기면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바뀌어 가는 것이 아닐까?
대대장이 새로 부임했다. 모두가 도열해서 새 대대장을 맞았다. 차가 본부 앞에 멈추자 최고참 원사가 재빠르게 다가가 차 문을 열었다. 대대장은 차에서 내리면서 그러지 말라고 말했다. “내가 손이 없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내 차 문은 내가 열 테니 이러지 마세요.”
모두에게 들릴 만큼 단호한 목소리였다. 젊은 장교들은 개념있는 대대장이 왔다고 기뻐했다. 하지만 최고참 원사는 속으로 웃었다. 이후에도 대대장의 차가 나타나면 최고참 원사는 어김 없이 손수 문을 열었다. 그 때마다 대대장은 “이러지 말라니까”라며 겸연쩍은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거부반응은 줄어들었다.
몇 개월이 지났다. 최고참 원사가 자리를 비운 날, 대대장의 차가 본부 앞에 섰다. 개념있는 대대장이 왔다고 기뻐했던 소대장 중 한 명이 대대장을 맞이했다. 소대장은 ‘내 차 문은 내가 열겠다’고 한 말을 기억했다. 차가 섰지만 소대장은 차 문을 열지 않았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 차 문이 열렸다. 대대장은 내리면서 소리를 쳤다. “자네는 손이 없나 발이 없나. 언제까지 가만히 서 있을 건가?” 소대장은 당황했다. 하지만 뭔가 행동을 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대대장에게 완전히 찍혀버렸다. 나중에 이 얘기를 전해들은 최고참 원사는 씩 웃었다.
앞으로의 비즈니스 환경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의 생생한 아이디어가 필수이다. 이제 기업은 제품 판매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고객에게 지속적인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다양한 고객의 욕구를 맞춰서 지속적인 서비스 제공하려면 리더 한 사람의 머리로는 부족하다. 모든 구성원이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야 한다.
사람은 위로 올라갈수록 자기중심적으로 변한다. 그런데 권위주의는 아이디어를 죽인다. 그러니 리더는 권위주의를 버려야 한다. 수많은 조직 연구 결과에 따르면 수직적인 조직에서는 리더의 수준을 넘어서는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는다. 리더보다 똑똑한 직원이 있더라도 입을 열지 않기 때문이다. 권위주의를 멀리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