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파리까지는 기차로 3시간 반 가량 걸립니다. 어떻게 하면 이 여정을 더 나은 여행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여행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던진 이 질문에 엔지니어들이 해답을 내놓았습니다. 60억 파운드(약 9조원)를 들여 런던-도버해협 구간의 선로를 새로 지어 여행 시간을 40분 단축시키는 것입니다.
과학적인 이 답변에 대해 로리 서덜랜드는 공학적으로는 맞는 얘기지만 여행 시간 자체를 단축시키는 건 상상력이 부족한 접근이라고 말하며, 나름의 답을 펼쳐 보입니다.
순진한 답변이라는 전제를 깐 후에, 그가 제안한 여행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전 세계의 탑모델을 고용해 기차 안을 걸어다니면서 공짜로 비싼 샴페인을 여행 내내 따라주면 되지 않을까요?”
여행 시간을 줄이는 대신 그는 여행하는 시간을 즐겁게 만들어도 여행의 가치가 올라갈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런 방식이라면 30억 파운드(약 4.5조원)의 예산으로도 충분하고, 오히려 승객들이 기차가 더 천천히 가길 바랄지도 모른다는 농담도 덧붙입니다.
그가 TED 강연에서 보이지 않는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야기했던 사례는 실제로 구현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의 접근은 의미가 있습니다. 인지적 가치만 바꿀 수 있어도 고객 경험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유머러스하게 공감시켰기 때문입니다.
10년 전의 TED 강연이 떠올랐던 건,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만난 홍보물 덕분입니다. 비행기를 타기 위해 탑승구들을 지나쳐가는데 어느 탑승구 근처 창문에 ‘That will be This’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습니다.
‘That’ 아래에는 현재 공사중인 모습이 창 밖으로 보이고, ‘This’ 아래에는 공사 완료 후의 모습을 설명과 함께 이미지로 표현했습니다. 앞으로 이 곳에 펼쳐질 풍경을 상상하게 함으로써 공사때문에 발생하는 소음과 미관상 불편함을 인지적 가치를 더해 완화시킨 것입니다.
공항 이용객들의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기술력, 자본력, 인력을 동원해 공사 기간을 단축시킬 수도 있겠지만, 승객들이 느끼는 인지적 가치만 긍정적으로 바꿔도 가성비 높게 문제 해결이 가능합니다. ‘놀라운 풍경이 곧 도착할 것입니다. (Amazing will soon be arriving)’라고 적힌 홍보물 자체가 이미 놀라운 풍경이었습니다.
로리 서덜랜드가 제안하듯이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꼭 대단한 기술이나 거창한 시도만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기술력, 자본력, 인력 만큼이나 상상력 또한 힘이 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