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일본의 세일 풍경에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늘 참신한 디자인과 독창적인 공간을 선보였던 하라주쿠의 쇼핑몰들은 세일기간이 되자 돌변해 그간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아수라장으로 바뀌었다.
어디가 어디인지 구분하기 어려울만큼 각종 포스터와 가격 안내판이 공간을 도배했다. 직원들은 소리를 지르거나 플래카드를 들고 춤을 추기도 했다. 일본의 세일기간 풍경은 흥미롭지만 결정장애를 일으켜 무엇을 사야 할지 당황하게 했다.
수많은 데이터 모두가 가치를 지니고 있을까? 매일 쏟아지는 과잉 정보들는 답답한 대기오염을 일으키는 스모그와 같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셍크는 저서 〈데이터 스모그〉에서 쓸데없는 정보가 공해처럼 개인의 삶에 피해를 준다는 의미에서 정보 폭식 시대의 반작용을 우려했다.
디지털 시대의 현대인들은 수많은 정보를 접하지만, 정작 가치있는 정보를 선별하기 위한 인식과 시간적 여유는 없다. 이러한 데이터 스모그는 우리의 인식과 사고의 질을 떨어뜨려 정보피로증후군에 시달리게 한다.
그런데 이런 데이터 스모그 현상은 온라인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어쩌면 일본의 세일기간 풍경처럼 온라인보다 오프라인에서 더 빈번한 것은 아닐까?
매출이 낮은 매장일수록 데이터 스모그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고객의 구매욕을 저해하는 복잡한 매장 레이아웃과 상품 전개, 넘쳐나는 정보로 결정장애를 일으키는 환경, 흥미롭지 않은 공간디자인 등이 매출이 저조한 매장들의 특징이다.
즉, 고객 관점이 아니라 판매자 관점으로 매장을 운영하면 소비 욕구를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환경이 조성된다. 그렇다면 잘 팔리는 매장들은 어떤 특징들이 있을까?
1️⃣ 단순한 공간구성
오프라인의 강점은 ‘바로 구매’이다. 제품을 선택하면 즉시 손에 넣을 수 있다. 반면 제품비교나 상품설명은 온라인보다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오프라인의 강점은 부각하고 단점을 보완하도록 매장환경과 시스템을 단순화해야 한다.
특히 매장 레이아웃에 따라 고객이 상품을 쉽게 찾고 오래 머물게 하여 더 많이 구매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입구부터 상품 진열과 각종 포스터로 빼곡하게 채우기보다는, 고객이 들어가기 쉽고 상품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동선을 확보하는 등 소비자 중심 레이아웃이 중요하다.
고객은 매장에서 보물찾기 하듯이 헤매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일본의 돈키호테처럼 매장 콘셉트가 정신없는 분위기를 표방하지 않는 이상, 매장이 단순하고 쇼핑 과정이 편리할수록 고객은 더 오래 머물기 마련이다.
2️⃣ 카테고리 휴리스틱
평소 많은 정보에 둘러싸여 있는 현대인들은 오프라인 공간에서만큼은 여유롭길 기대한다. 무수히 많은 상품과 광고물로 채워진 공간에서는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하고 빨리 나가고 싶을 뿐이다.
선택지가 많은 경우 의사결정 과정에서 과거 경험이나 주관에 의존해 빠르게 판단해 결정을 내리는데, 이처럼 직관적 판단에 의존하는 행동 법칙을 ‘ 휴리스틱(heuristic, 어림짐작)’이라 한다.
이러한 휴리스틱 방식으로 제품을 카테고리별로 묶어 볼륨 전개를 하거나 주력상품과 연관상품을 연계해 구성하면 구매 의사결정 과정을 빠르게 도울 수 있다. 여기에 효과적인 레이아웃 설계는 카테고리 휴리스틱 효과를 더욱 높여준다.
3️⃣ 적절한 인스토어 프로모션
인스토어 프로모션(ISP)이란 매장 내에서 여러 판매촉진을 통해 구매율을 높이는 활동이다. ISP를 잘 활용하여 고객 스스로 정보를 판단하고 활용하는 환경을 제공하고 적재 적소에 정보를 노출하면 구매로 연결된다. 하지만 지나친 ISP는 오히려 고객의 선택과 구매 결정에 방해요소로 작용하므로 적정선을 지켜야 한다.
4️⃣ 독창적인 공간 디자인
매장은 물건을 쌓아두는 공간이 아니다. 상품으로만 가득 채워진 매장은 창고와 다를 바가 없다. 매장은 공간과 고객 그리고 체험적 요소가 조화를 이뤄야만 비로소 구매로 이어지고 브랜드를 인식하는 이미지로 작용하게 된다.
공간을 둘러싼 환경은 고객이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방식에 영향을 준다.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공간 디자인은 새로운 영감과 소비 욕구를 자극하고, 제품과 연결된 체험적 요소들은 브랜드를 인식하게 만들어 기업 이미지와 호감도를 높인다.
5️⃣ 매장의 주인공은 상품
리테일 매장을 연극무대와 비교해보자. 아무리 무대장치 및 음향이 화려하고 뛰어나도 주인공의 발연기는 관객에게 감동을 전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공간 디자인과 비주얼 머천다이징이 아무리 매력적이라도 상품이 고객 니즈(디자인, 품질, 가격 등)에 부합되지 않는다면 구매로 이어지지 않는다. 상품을 담는 공간 디자인은 분명 중요하지만 매장의 주인공은 역시 상품이다.
다시 일본의 세일풍경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 그 기간에 쇼핑몰들은 고객 편의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오히려 구매하기 어려운 환경이 된다. 그런데도 고객들은 세일을 즐기고 있었다. 왜냐하면 세일이 끝나면 바로 기존의 세련되고 독창적인 매장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즉 세일기간과 평소의 매장 분위기가 확연히 다른 것이다. 아마도 일 년 내내 세일처럼 혼란스러운 매장 환경이라면 고객은 새로움과 흥미로움을 느끼지 못할뿐더러, 수많은 선택지는 ‘데이터 스모그'가 되어 피로감만 가중시켰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