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질문을 던지면, 필연적으로 잘못된 답이 나온다>
올해 과방위의 한국방송공사(KBS) 국정감사에는 좀 특별한 질문들이 나왔다.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전세계적인 성공에 고무된 국회의원들은, 뜬금없이 KBS를 향해 “우리도 이런 거 해보자”는 말을 던지기 시작했다.
박성중 의원은 양승동 사장에게 “KBS는 왜 <오징어 게임> 같은 콘텐츠를 생산하지 못하느냐”고 물었고, 조정식 의원은 “<오징어 게임>의 흥행으로 우리나라 대중문화의 위상이 세계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KBS가 그런 역할을 선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만약 KBS가 유리판 징검다리를 건너다가 추락한 사람의 머리에서 뇌수가 흘러나오는 장면을 보여주는 드라마를 방영했다면, 아마 과방위 의원들의 국정감사 질문은 사뭇 달라졌을 것이다. 분명 “모두가 접근할 수 있는 공영방송에서 이런 수위의 작품을 방영해도 된다고 생각하는가?”라며 크게 질타했으리라.
유료 멤버십으로 운영되는 사기업 넷플릭스와, “지역과 여건에 관계없이 모든 시청자가 양질의 프로그램을 제공받도록 무료 보편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설립 목적인 공영 방송사를 등가비교 하는 것 자체가 몰상식한 일이다.
KBS는 <오징어 게임> 같은 작품을 만들어 세계적인 흥행을 하라고 만든 회사가 아니다. KBS의 존재 이유는 방송법 제43조 제1항에 명시하듯 “공정하고 건전한 방송문화를 정착시키고 국내외 방송을 효율적으로 실시”하기 위함이다.
그 누구도 부당하게 방송 서비스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TV를 소유한 국민에게 기본 수신료 이외에는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난시청 지역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며, 시청각장애인들의 동등한 정보접근권을 위해 화면해설 방송 및 자막, 수어 방송을 제공하고, 그것을 방송 표준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존재 이유인 것이다.
나아가 방송이 연령, 성별, 출신 지역, 학력, 재력, 종교, 장애, 성적 지향 등의 이유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내용으로 채워지도록 공정하고 건전한 방송문화를 구축하는 것이 한국방송공사의 가장 큰 책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국정감사 기간에 국회의원들이 KBS에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면 그건 “왜 너희는 쟤들처럼 상업적으로 성공한 작품을 내지 못했느냐?”가 아니라 “왜 너희는 방송의 공영성을 더 열심히 강화하지 않았느냐?”가 되어야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차별 없이 양질의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너희는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느냐?”를 물어야 한다.
“KBS는 <오징어 게임> 같은 거 못 만드냐”고 물어본 국회의원들은 한국방송공사의 존재 이유 자체를 헷갈렸다. 공사의 존재 이유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방송의 공영성 확립을 위해 만들어진 방송사에 전세계에 콘텐츠 파워를 과시하는 상업적인 성공을 하라는 주문을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가?
상업성을 강화하기 위해 공영성을 타협하는 결정, 콘텐츠 경쟁력 제고를 최우선 순위로 놓기 위해 다른 책무들의 우선순위를 뒤로하는 결정이 내려질 수밖에 없지 않겠나? 잘못된 질문을 던지면 필연적으로 잘못된 답이 나오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