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에 보편적인 행복이란 없어... 내가 나랑 친해지는 방법을 찾아야"
Naver
“정신과 의사도 행복 잘 몰라요.” 김건종 정신의학 전문의는 행복이라 부를 만한 것이 있다고 해도, 그건 아주 사적이고 내밀한 경험이나 상태라고 했다. 권위자나 타인의 말, SNS의 풍경을 넘어서는 자신만의 ‘건강한 마음’을, 또 그 이상의 것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1️⃣세상이 온통 ‘행복’을 이야기한다. 행복이 뭔지도 잘 모르는 채로, 강요당하는 기분도 들고 강박도 생긴다. 🅰️인간이 평온하고 만족스럽고 괴롭지 않은 상태를 추구하는 건 본능이기도 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람마다 미묘하게 다르지만, 그런 상태를 주로 행복이라 부르며 저마다 행복해지려고 한다. 그런데 ‘강박’이란 단어를 붙일 만큼 행복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건 어쩌면 사는 게 힘들어서인 것 같다. 2️⃣정신과 의사로서 내린 행복의 정의가 있다면? 🅰️정신과 의사는 사실 행복을 잘 모른다. 사람들을 행복하게도 못 만든다. 그저 조금 덜 괴롭게 해줄 수 있을 뿐이다. 칸트도 ‘행복은 규정할 수 없는 개념이다’고 했고, 아도르노는 행복이란 건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상태여서 우리가 ‘행복해’라고 말하는 순간 거기에서 빠져나와 버린다고 했다. 3️⃣우린 무의식중에 ‘행복’이란 단어를 자주 쓰는데? 🅰️나는 평양냉면을 무척 좋아한다. 서울에 올 때 1년에 한 번 정도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 평양냉면을 먹는다. 어제가 그런 날이었는데,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 좋아하는 평양냉면을 한 그릇 먹으니 ‘아, 행복하다’라는 말이 나오더라. 그런 일상적인 순간들이 행복일 것이다. 실제로 이게 진화론 쪽에서 말하는 행복의 핵심이다. 4️⃣ 평양냉면이 행복 처방전이라면, 오늘 인터뷰가 허탈하게 느껴질 것 같은데? 🅰️‘나한테 이게 행복이니까, 당신들도 이걸 따라야 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각자 느낀 일상의 순간들은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랑 상관없다. 전문가나 권위자에게 의존하지 말고 ‘나는 어떨 때 좋지?’를 생각하는게 우선이다. 한마디로 행복은 굉장히 사적인 것이다. 그런데 우린 자꾸 ‘보편적인 행복’이 있을 거라 믿는다. 그러니 괴리가 온다. 우리 사회의 문제 중 하나가 이거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지? 권위자는 뭐라고 말했지? 그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겠지? 나도 그걸 따라가야겠다’고… 5️⃣흔한 말로 ‘정신력’이 약해졌나? 🅰️그건 판단할 수 없다. 오히려 그 ‘정신력’이라는 정체불명의 개념이 문제인 것 같다. 여기에는 한국적인 측면이 있는데, 우리는 긍정적이고 낙천적이고 외향적인 가치들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너는 정신력이 약해서 그래, 의지가 약해서 그래’라는 식으로 아주 간단하게 어두운 감정들을 없애버리고, 그저 긍정적인 사람이 되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는 믿음 같은 게 우리 사회에 있다. 삶의 당연한 요소인 그늘을 제거하려는 불가능한 시도로 이어지고, 그게 행복에 대한 강박으로 연결되는 것 같다. 6️⃣환자들에게는 주로 어떤 말을 하나? 🅰️햇빛이 비치는 날엔 꼭 그만큼의 그늘이 진다. 삶이라는 게 밝음과 어둠의 조화인데, 거기서 어두운 감정들을 없애버려 하얗게 표백시키면 그건 삶이 아니다. 행복은 상태고, 또 과정이기도 하다. 괴롭고 힘든 순간에서 느긋하고 평안한 순간으로 옮겨가는 것 말이다. 그렇다면 행복을 위해서는 힘들고 괴로운 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이야기고… 7️⃣ 그래도 행복의 방법이 있지 않나? 🅰️자신과 친해야 한다. 내가 나랑 함께 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좋다. 내가 나를 잘 모르니까 ‘저 사람 말을 들어볼까?’하는 건데, SNS에서 행복해 보이는 것, 누군가 ‘행복해’라며 올려놓은 사진 등을 넘어서서 ‘진짜 나는 뭐가 좋지’라고 묻는 순간들이 의미가 있을 거다. 8️⃣ 좋아하는 행복에 대한 말들은? 🅰️마크 롤랜즈라는 철학자의 말을 빌리면, ‘언젠가 우리가 삶을 다 살고, 내 삶에서 최고의 순간이 언제였지? 되돌아볼 때, 그게 그저 행복하기만 했던 순간일까?’그건 아닐 것이다. 또, 도널드 위니코트는 ‘마음이 아프지 않으면 건강일 수 있어도 그게 삶은 아니다’라고 했다. 늘 행복, 건강한 마음 그 이상의 것은 없을까 고민한다. 그게 정말 다인 것일까? 하고. 미국 뇌정신과 의사인 시겔의 말도 생각할 거리를 준다. 사람의 양쪽엔 경직되고 굳어 있는 상태와 혼란스럽고 카오틱한 상태가 둘 다 있고, 그 사이로 강이 흐른다고. 우린 그 강으로 그저 흘러가는 것이라고, 삶과 함께…
2021년 11월 28일 오전 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