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우테이프의 편지 #3>
언제나 대견스러운 절크 보아라.
우리의 DNA에 흐르는 직장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는 생존본능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실로 대단하단다. 아무나 원한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철면피 근성은 타고나는 것이다. 너는 어릴 때부터 신동이었지. 사건의 유불리에 따라 선생님 앞에서나 친구들 사이에서도 서슴없이 말과 행동을 뒤바꾸거나 실제 네가 말하고 행한 것을 은밀히 은폐하거나 부정하는 모습에서 나 조차도 사건의 진위여부가 헛갈릴 정도였으니까. 그런 네가 언제나 대견스러웠다. 직장에서 살아남는 우리의 생존전략이 어느 할 일 없는 학자놈 때문에 만천하에 드러나긴 했지만 우리 대대로 흐르는 생존본능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거라.
이제 마지막 전술을 이야기 할 차례다. 기억하겠지? 지난 번 편지에서 가장 현명한 방법은 일하는 척 하면서 일 잘하는 사람들에 편승하여 숟가락 얻는 전술이란 것 말이다. 일잘러들을 질투해 그들이 일하는 족족 딴지를 거는 짓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하지만 숟가락 전술이 안통할 때가 있단다. 딴지는 바로 그 때 사용하는 것이지!
*딴지신공은 칼이다.
숟가락 얹는 게 불가능하다면 그 다음 해야 할 것이 바로 딴지신공이다. - 거듭 강조하지만 첫 째는 숟가락 얹기요, 그게 안될시 딴지신공을 펼치는 것이다. - 우선 딴지신공의 개념원리를 잘 이해해야 한다. 딴지신공을 가장 잘 배울 수 있는 판은 뭐니뭐니해도 정치판이다. 정치인들이 주로 발휘하는 기술이지. 당리당략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상대방의 좋은 정책일지라도 비난하고 끈질기게 반대하여 끝끝내 아무 일도 진척 시키지 못하게 하거나 일의 효과를 약화 시키는 전술이란다. 이 전술은 너를 끝까지 살아남게 할 칼이 될 게다.
딴지신공의 세부 전술은 다음과 같다.
1)초치기
깎아내리기 기술이다. 일잘러가 어떤 안을 제시했을 때 대세에 지장없는 지엽적인 부분에서 깎아내릴 것을 찾는 것이다. 너는 일잘러가 얼마나 심도 있게 연구하며 열심히 준비한 제안일지를 잘 알고 있고 심지어 그 안이 좋다는 것도 알테지만 그의 성과를 깎아내리는 것이 목적이므로 잘된점은 안중에도 두지 말고 아주 별 거 아닌 것에 집중하여 지적하는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하찮은 지적인지 사람들은 생각하지 못하고 별 거 아닌 이슈가 새롭게 주목받게 되는 효과가 있지. 특히 시행을 곧 앞둔 최종 의사결정 단계에서 “초치기”는 임팩트가 크단다. 일잘러는 일을 바로 진척시키기 어렵고 정해진 시간 내 추가적으로 별 거 아닌 그 지엽적인 지적을 처리해야 하는 공수로 시간낭비를 초래할 수 있단다.
2)없는 것 말하기
최종 의사결정시에 일잘러가 A, B, C안을 준비해 이 중 어떤 안이 가장 좋을지를 주변의 의견을 물을 때 거기에 없는 D안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최종 단계라는 것이다. 최종 A, B, C를 제안하기까지 일잘러는 많은 것을 연구하여 가장 성공 가능성이 높고 프로젝트 목적에 부합한 안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물론 프로젝트를 혁신적으로 발전 시키는 핵심적인 D안이라면 당연히 D안을 제시하는 것은 매우 필요한 일이지만 우리는 그렇게까지 깊게 고민하지도 않고 노력도 하지 않으니 역시 D안은 본질이 아닌 지엽적인 부분에 대한 내용일테지. 중요한 것은 그것이 그럴듯하게 들려야 한다는 것이다. 학술적으로 이것을 “기적의 논리”라고 부른다. 이 전술은 정량적인 일에서 보다 정성적인 일에 유용하단다. 주관성이 관여할 가능성이 큰 사안일수록 D안을 제시하기도 수월하고 다양한 의견의 존중이라는 측면에서도 부담이 없고 말이다. 디자인과 관련된 일에서 많이 활용이 되더구나.
3)반대하기
사사건건 반대로 하는 것이다. 딴지신공의 백미라고 할 수 있지. 일잘러가 왼쪽이라 하면 오른쪽을 말하는 것이지. 하지만 일차원적인 반대는 금물이다. 예컨데 일잘러가 어떤 사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하면 추진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는 게 아니라 보다 “신중해야 한다”, “시기상조다”, “재검할 필요가 있다” 식으로 대응하는 것이지. 무조건 반대할 때도 이렇듯 창의성이 필요한 일이란다.
자, 절크야. 이제 내가 지금까지 네게 말한 3가지 전술
- 1. 강약약강을 다양한 관점으로 실행하라.
- 2. 가슴에 숟가락 하나는 꼭 품고 다녀라.
- 3. 딴지신공은 칼이다.
을 잘 습득하여 더욱 교묘하게, 더욱 은밀하게, 더욱 뻔뻔하게 일하는 척하면서, 가짜 일 위주로 하면서, 웃으면서 슬렁슬렁 직장에 다니며 종국엔 조직에 가장 악영향을 끼치는 리더로 성장하기를 바라마. 바로 우리 궁극의 꿈인 “조직의 원흉”이 되는 것이다.
네 꿈을 응원하는 삼촌이
——————
(참조)
직장에 못된 놈 많은데…그들이 잘나간다고요? [뉴욕대 심리학 교수 인터뷰]
https://m.mk.co.kr/news/business/view/2022/03/2439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