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욕망에서 출발한 공간 : 이태원 그래픽 ] 01. 공간을 기획한다는 것은 뚜렷한 결과물이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주 추상적인 개념을 설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눈에 보이는 건물이나 그 내부에 존재하는 요소들을 만들어 내는 행위 위에 '경험'이라는 어마어마한 가치를 담아내야 하기 때문이죠. 02. 최근 이태원에 (그것도 지하철역과는 한참이 떨어진 구석진 곳에) '그래픽'이라는 서점이 오픈했습니다. 리퀴드와 그래픽 노블을 다룬다고 소개하지만 그들 스스로가 '술 마시는 만화방'으로 불리기를 더 바라는 모양새죠. 건물 외관부터 내부 설계까지 오픈을 하자마자 수많은 사람들에게 높은 관심을 받는 중입니다. 03. '그래픽'의 공간 설계를 담당한 오온의 김종유 대표님은 '술 취향'이 비슷한 클라이언트를 만난 것이 이 프로젝트의 출발점이라고 했습니다. 상세한 그림을 그리기 전에 원초적인 취향을 구체화하는 것을 우선순위에 둔 것이죠. 그리고 그 취향을 가운데 두고 모든 물음이 방사형으로 뻗어나갔습니다. 04. 책도 읽어야 하고 술도 마셔야 하면 조도는 어떻게 계획해야 할까? 뜨겁게 타올랐다가 짜게 식어버린 경리단길에 무슨 수로 사람들의 발길이 들게 할까? 일반 서적과는 달리 판형이 모두 다른 그래픽 노블은 어떻게 배치하고 보관해야 할까? 서점처럼 딱딱하지는 않으면서 술집처럼 너무 자유분방하게 보이지는 않을 수 없을까? 제약만이 존재하는 것 같은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어쩌면 취향을 풀어내는 과정에서 찾은듯한 느낌입니다. 05. 가끔은 이렇게 욕망을 구체화하는 것이 훨씬 더 세밀하고 쫀쫀한 기획을 가능하게 한다고 봅니다. 원하는 모습과 분위기, 그 공간에서 받고 또 나누고자 하는 경험의 상들이 생생해지면 어디까지 타협할 수 있는지를 정하기도 매우 유리하거든요. 06. 저는 멋진 공간들이 많아지는 것도 환영이지만 이렇게 아주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Wants에서 출발한 공간들 역시 두 팔 벌려 환영합니다. 단순히 멋진 공간은 '어떻게 설계했을까?'가 궁금해지는데 그래픽처럼 욕망을 건드린 공간은 '누가 설계했을까?'라고 그 사람이 궁금해지기도 하니까요.

조용하고 흰: 그래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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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20일 오전 3:31

댓글 2

  • 삭제된 사용자

    2022년 04월 21일

    그래픽 근처에 작업실을 얻어 4년 정도를 지냈었는데, 그래픽 이전의 모습부터 기억하는 저는 모든 게 너무나도 신기하고 새로워요ㅋㅋㅋㅋ 저 장소에 얽힌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도 잠깐 생각이 나기도 하고 말이죠! 아무튼 재미있는 공간입니다. :)

    와 그렇군요 : ) 저도 저 동네가 익숙한 곳이라 '저 길에.. 저런 공간이..?' 하면서 지켜봤어요 ㅋ 그래도 완성되고나니 너무 멋진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