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몇 분들께서 1:1 메시지를 통해 질문사항을 보내주시곤 합니다. 그중 같이 한번 이야기해 보면 좋겠다 싶은 내용들을 추려서 Q&A로 다뤄보고자 합니다. 몇 편의 시리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선은 제 생각을 성심성의껏 적어봅니다.
01. DM을 통해 제게 질문을 주신 분은 플랫폼 기업에서 9년 차 콘텐츠 기획자로 일하고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사회에 첫발을 딛일 때부터 기획자였고, 지금도 기획자고, 앞으로도 아마 기획 일을 계속할 것 같다고 하셨죠.
하지만 오래 일해오며 나름 스스로를 다독이는 법을 터득했다고 해도 쉽게 적응이 안 되는 영역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질문의 원문 그대로를 옮겨보면 이렇습니다.
02. " 연차가 높아도 여전히 부정적인 피드백은 당황스럽습니다. 특히 제가 기획한 것들에 대해 부정적인 피드백이 오면 더 그렇습니다. 단순히 기분이 나빠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피드백이 너무 크게 느껴져서 자신감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느낌입니다. 정답이 없는 콘텐츠 분야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건지 순전히 제 문제인지 헷갈립니다. 상대방이 강한 어조나 불편한 워딩을 쓰면 이 또한 커버가 잘 안됩니다.
기획자로 일하시면서 부정적인 피드백은 어떻게 극복하시는 지가 궁금합니다. "
03. 일단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도 극복을 잘 못합니다... 제가 이 질문을 받고 크게 공감한 포인트가 있는데요. '내가 기획한 것에 대한 부정적인 피드백이 더 크게 느껴진다'라는 것이 바로 그 대목입니다.
저 역시 그런 것 같아요. 소위 제가 기획한 것이 여지없이 까이거나 아예 방향성을 부정당하면 그 느낌은 꽤 처참합니다.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경우도 있고 얼른 수정해서 최대한 좀 빠르게 만회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죠.
04.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 볼 필요는 분명히 있다고 봅니다. 지금 나에게 피드백 주는 사람에게서 팩트만 걸러낼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거죠. 전 부정적인 피드백이 우리에게 주는 데미지가 더 커지는 이유는 결국 누가 전달하느냐에 대한 차이가 매우 크다고 생각하거든요. 같은 말이라도 충분히 상대방을 배려해 개선점 위주로만 던지는 A라는 사람이 있고, 개선점 하나에 자기감정 아홉 개를 실어서 미사일처럼 날리는 B라는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B에게서 받는 감정적 상처가 훨씬 클 테니 말입니다.
05. 그래서 저는 B에게서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았을 땐 A라는 사람의 화법을 필터로 써봅니다.
즉 A가 저 의견을 나에게 전달해 줬다면 어떤 형태로 말해줬을까를 고민해 보면 그중에서 제가 취할 것과 버릴 것이 보이더라고요. B가 인간적으로 싫다고 해서 그 사람의 피드백을 모두 무시할 수는 없으니 최대한 나의 감정선을 지키며 팩트와 마주하는 방법을 써본 겁니다.
06. 그래도 멘탈이 너무 흔들린다 싶을 때는 양해를 구하고 A에게 직접 대화를 요청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제가 B에게서 이런 피드백을 들었는데 제 관점에서 팩트는 이것인 것 같습니다. 혹시 제가 이해한 게 맞을까요?'라고 한 번쯤 확인을 거치는 것이죠. 그때마다 저는 B에게서 들었던 감정적인 워딩들은 모두 뜰채로 걷어내고 진짜 내가 남겨야 하는 말들만 손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매번 A에게 이렇게 묻고 확인받을 수는 없겠지만 가끔씩이라면 이 방법이 크게 도움이 된다고 얘기해 주고 싶습니다. (제 경험상 고민을 거듭하다 다시 B에게 되묻는 건 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참고해 두시면 좋을 것 같네요...)
07.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주위에 A 같은 동료가 없으면요?'
저도 이 질문을 스스로 던진 다음 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요, 그럼 정말 그 조직에 계속 있어야 할지 떠나야 할지를 고민해 봐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극단적이라고 생각되실지 모르겠지만 내가 속한 조직에 그 누구도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긍정적인 애티튜드로 피드백을 줄 수 없다면 그건 불행의 한 가운데 있는 것과 같다고 생각되거든요. 그럼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기획을 한다고 한들 그게 객관적인 피드백과 평가를 받을 확률은 거의 없다는 게 제 결론입니다.
08. '명상을 하며 부정적인 기억을 지워보세요', '회사에서 훌쩍 벗어나 기분 좋은 순간들을 찾아보세요' 같은 조언은 지금 타이밍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제가 수양이 덜 된 탓도 있겠지만..) 그래도 가급적 현장에서 해결해 볼 수 있는 방법을 찾고 그래도 안되면 저만치 좀 떨어져서 사건을 바라보는 게 맞다고 생각하니까요. 아직까지는 문제가 발생한 곳에서 해결 방법을 구해봤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09. 오늘 질문에 대한 한 줄 정리를 해본다면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부정적인 피드백이 내 감정을 건드렸다면 피드백 하는 화자의 영향일 확률이 크다. 그땐 내 주위에 좋은 애티튜드로 정확한 피드백을 주는 사람을 떠올리자. 그리고 그 사람의 화법을 통해 1차로 필터링을 해보자. 그래도 안된다면 직접 고민을 털어놓고 팩트를 분리해 내자.'
10. 딴소리지만 어쩌면 우리가 늘 주변에 좋은 사람을 가까이 두려는 이유도 이와 일맥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 나쁜 영향들을 좋은 사람의 관점을 통해 걸러내기 위해서 말이죠. 말은 이렇게 번지르르하게 했지만 부디 저 또한 그런 필터를 줄 수 있는 사람인지 돌이켜 봐야겠네요. 이래서 질문을 받으면 답을 한 뒤에 꼭 스스로를 체크하는 과정이 필요한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