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1 - 낯섦이 주는 선물

초중고가 동네 리그라면 대학은 전국리그이다. 그렇다 보니 갑자기 넓은 세상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넓은 세상에 선 낯선 나를 마주하게 된다. ​1) 낯섦과 마주하면 알게 되는 것 대학에 입학하고 두 가지를 알게 됐다. 첫째는, 내가 모르는 세상이 너무 많다. 동네 리그에선 볼 수 없었던 부잣집 친구들을 보면서 드라마가 드라마가 아닌 현실이라는 걸 알게 된다. 공부 말고 딴짓하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입시 준비를 했는데, 대학을 가보니 춤 잘 추는 친구, 영어 잘하는 친구, 수영 잘하는 친구들… ‘와,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라는 멘붕이 온다. ​둘째는, 내가 내가 생각했던 내가 아닐 수도 있다는 물음이다. 나는 내가 그림을 잘 그리고 디자인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대학을 가보니 어쩌면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깨달음이 왔다. 기대보다 나에게 창의력이나 디자인 능력이 없다는 걸 느끼면서 꽤나 오랫동안 열등감과 자괴감에 괴로워했었다. 낯섦은 늘 그렇게 괴로움과 불편을 동반하나 보다. ​2) 관찰과 기록의 힘 스트레스를 접할 때 나타나는 반응은 크게 ‘공격(Fight)’, ‘도망(Flight)’, ‘얼음(Freeze)’ 이 세 가지로 나뉜다고 한다. 나의 경우는 (무서울 때) 주로 얼음 모드로 진입한다. 경험상, 싸우는 것도 도망가는 것도 대항할 힘과 판단 능력이 있을 때 가능한 거지, 그조차 안되면 그저 숨죽이고 상황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모드가 되지 않나 싶다. ​나에게 얼음 모드는 관찰 모드였다. 즉흥적 반응을 보류하고 주변 상황과 내 상태를 관찰한다. 그리고 기록을 한다. 최대한 판단은 미루고, 사실 그대로 보이고 들리고 맡아지고 만져지는 것들을 기록하곤 했다. 그래서 그 당시 나의 일기를 보면 대부분 일상의 관찰기록이다. 동아리 사무실의 어둑했던 복도, 어느 여름날 축축했던 수건, 술에 취해 귀에 왱왱거렸던 홍대 뒷골목 소음…. 이런 관찰 기록이 상황을 인지하는 촉을 발달시키는데 엄청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3) 성장을 위한 유연함 낯선 세상과 마주하면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이런 멘붕이 오기 마련이다. 살면서 큰 성장을 하게 되는 시점을 보면, 이렇게 인생의 낯선 분기점을 넘는 트리거들이 있을 때가 아닌가 싶다. 대학 입학, 취업이나 창업, 유학이나 이민처럼 인생의 분기점들은 성장의 큰 발판이 되곤 한다. 그래서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낯선 세상을 만나는 방법으로 여행이나 독서를 추천하는 것일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서 성장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역량은 ‘유연함’이다.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것들, 지식, 경험, 가치 판단 등을 보류하고, 새로운 것들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배우는 게 성장의 출발점이다. 돌아보면, 지금 직장에 입사하고 적응 기간이 꽤 오래 걸렸던 건 나를 비워내는 유연함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내가 경력자인데, 이전 직장에서는 안 이랬는데, 이 프로세스는 이렇게 하면 안 되는데…’ 등의 생각이 새로움을 받아들이는데 큰 장애물이 되었던 것 같다. 경험이 많다는 건 분명 장점이지만, 유연함이 동반되지 않으면 앞으로 전진하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아는 것'이 메타인지의 베이스인데, 아는 것을 안다고 고집하지 않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건강한 자아로 성장할 수 있지 않나 싶다. ​ 스무살에 느꼈던 혼란스러움은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단계였다는 걸 이젠 안다. 낯섦과 마주하면 내가 누구인지, 뭘 하고 싶은지, 어디까지 해낼 수 있는 사람인지, 이게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일인지 고민하는 출발점에 서게 된다. 떨림은 낯섦이 주는 선물이다. 낯선 것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선물 포장 벗기는 마음으로 반갑게.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든 나를 성장하게 할 것이다. ///

[커리어 노트 95] 스무살 1 - 낯섦이 주.. : 네이버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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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20일 오전 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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