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최근 가장 관심 있게 읽은 기사이자, 가장 좋은 자극이 되어준 기사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작년 수학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교수님을 인터뷰한 내용이었죠. 기사를 통해 소개된 허준이 교수님의 생각과 행동 방식을 세 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목표가 없다. 목표 설정 자체가 그 목표에 다가가기 위한 큰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 나는 자극에 약한 사람이라 잘 중독된다. 그래서 일상을 깨뜨릴 수 있는 자극은 거의 피한다.
- 수학을 꼭 해야 한다고 당위성을 부여하면 오히려 수학에 재미를 느낄 수 없을 것 같다.
02. 온전히 자신의 연구에 집중하기 위해 매일 똑같은 식단으로 점심을 먹고, 철저한 생활 루틴을 지키며, 모래시계까지 동원해 15분 타임으로 집중과 휴식을 반복하는 그의 일상은 정말이지 감탄과 존경을 이끌어내기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이 기사를 읽어본 분들이라면 비슷한 느낌을 받았을 것 같은데요, 이런 삶의 방식이 흔히 우리가 아는 성공하기 위해 독하게 노력하는 사람들의 그것과는 꽤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목표 달성을 위해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게 아니라 온전히 삶의 즐거움과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몰입할 수 있도록 스스로 최상의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이니 말이죠.
03. 그래서 저는 집중하고 몰입하는 자세는 그 무엇보다 아름다운 모습을 띤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치열함보단 평온함이 더 크고, 에너지를 갉아먹는 행위보단 새로운 에너지를 받아들이는 행위가 더 부각되는 순간이 바로 진짜 집중하고 몰입하는 순간이 아닐까 싶거든요. 그러니 내가 어딘가로 빠지는 행위뿐 아니라 다른 것들이 나에게 온전하게 스며들 수 있도록 하는 것 역시 집중을 설명하는 새로운 관점이 될 수 있을지 모르죠.
04. '어떻게 하면 새로운 자극을 받을 수 있을까'는 기획이나 크리에이티브를 다루는 대부분의 영역에서 한결같이 떠오르는 질문입니다.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의 원천,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소스들을 바탕으로 전에 없던 것을 구상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늘 우리가 갈구하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05.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이런 시각에서 몇 걸음 떨어져 조금은 다르게 바라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좋은 경험과 자극들에 나 스스로를 한없이 노출시키는 것도 분명 필요한 일이지만 때로는 이들을 취사선택해서 올바르게 수용할 수 있도록 내 자신을 잘 관리하는 게 더 중요할 수도 있으니 말이죠. 마치 과거에는 다 먹지도 못할 음식을 일단 접시에 담고 보자는 주의였다면, 요즘은 한 끼를 먹더라도 온전히 내가 즐기고 음미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음식을 찾게 되는 느낌이랄까요.
06. 그리고 이건 '비우자', '덜어내자'는 종교적 혹은 철학적 관점의 이야기와는 또 좀 다른 것 같아요. 우리가 추구하려는 집중과 몰입은 단순히 무엇에 집착하고 욕심 내려는 것이 아니잖아요. 오히려 진정으로 내 에너지를 제대로 쏟고 싶은 부분을 찾아서 거기에 온전히 나를 던지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욕망이니까요, 동시에 더 좋은 것들을 얻어내고 더불어 더 많은 것들을 생산해낼 수 있다면 우리 삶에 이런 윈윈 게임도 없지 싶습니다.
07. 한편 허준이 교수님이 설정한 공식들을 저에게 맞는 방정식으로 바꿔본다면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궁금하더군요. 저 역시 루틴이 있는 삶을 엄청 리스펙하는 사람 중 한 명이고, 반복에 지치지 않으려 노력하는 타입이라 생각되기에 교수님과 비슷한 결에서 실현 가능한 방식들을 한 번 고민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연구자가 아니니까요... 회사원은 목표에서 완전 이탈할 수도 없고, 자극에서 벗어나 완전무결한(?) 시간을 갖는 것도 불가능하니 저에게 맞는 집중과 몰입으로 재해석되어야 하겠더라고요...)
08. 첫째, 의미 없는 것에까지 목표나 과업을 부여하지 않는다.
자연스레 해결이 될 문제거나 더 좋은 타이밍에 다시 꺼내도 늦지 않은 문제라면 일단 외면하는 것도 답일 수 있다.
둘째, 집중과 몰입을 위한 시간대를 따로 설정해 둔다.
일상의 시간 속 모든 지점에서 집중과 몰입을 하려는 건 어리석고 무모한 일이니, 일정한 시간을 따로 떼어 가장 이상적인 리듬일 때 온전히 무엇인가를 해보는 게 더 낫다.
셋째, 장밋빛 미래를 상상하기보다는 적당히 괜찮은 일상에 더 가치를 두자.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확실한 오늘을 반납하기보다는, 지금 내가 다룰 수 있는 문제들을 깔끔하고 현명하게 처리하는 데 힘써보자.
09. 이런 식으로 풀어써본다면 아마 여러분 각자에게도 집중과 몰입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세워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번 한 주의 시작은 '나에게 있어 집중한다는 것, 몰입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지, 그리고 이걸 잘 달성하기 위한 나만의 방식은 무엇일지를 한 번 설정해 보는 것은 어떨지 싶네요. 허준이 교수님 정도의 레벨은 아니더라도 우리 일상의 불필요한 것들을 디톡스 할 수 있는 작은 실천법 정도는 충분히 마련될 수 있을 테니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