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비혼, 주거, 공동체, 지속가능성에 대한 생각들. 1. “비혼지향 생활공동체 공덕동하우스 대표”라는 건 뭘까? 1-1. 얼마 전 라디오 광고를 했다. ‘결혼’ 아닌 다양하고 평등한 공동체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광고. 한국 사회에서 사람을 소개할 때 흔히 하듯 소속 단체 이름, 직함, 이름 순으로 자기 소개를 했다. “비혼지향 생활공동체 공덕동하우스 대표”라고 말이다. 원래는 “비혼을 지향하는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넣고 싶었다. 2. 질문들: 우리는 대안가족인가? 활동단체인가? 가족의 대표라고 한다면, 나는 가장인가? 세대주인가? 생계부양자인가? 만약 공덕동하우스가 활동단체라면, 나는 활동하는 사람들이랑 24시간 같이 살고 노는 사람인가? 즉, 내 삶의 전부가 곧 활동인가? 페미니즘은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어서 그래도 괜찮나? 활동은 무엇인가? 세미나? 캠페인? 인터뷰? 저술과 강연? 각종 정책 자문에 참여하는 것? 점거 같은 걸 해야 하나? 그런데 어디를 점거하지? 3. 결혼을 경유하지 않고 친밀과 돌봄을 실천해 보겠다는 시도는 사회적으로 이렇게까지 야심 찬 것으로 읽힌다(최근엔 수박 먹고 드러누워서 문득 ‘이건 지나친 관심 아닌가?’ 생각했다). 한겨레, EBS, 여성조선(무려!)∙∙∙.우리를 궁금해 하며 구경하고 싶어 했던 언론만 해도 수십 군데다. 4. 거실이 있으면 관계가 넓어진다. 내 입장에서 보면 이 관계망은 자매, 애인, 친구, 남매가 뒤죽박죽 섞여 있는 공동체였고 나는 그 비균질한 관계망이 마음에 들었다. 결혼을 해서 이 균형을 고의로 깨고 싶지 않았고, 이대로 잘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사는 게 나쁘지 않고, 심지어 좋다고 얘기하다가, 비혼 키워드를 다루는 자리에까지 섭외 받았다. 당시 자주 드나들던 친구들을 중심으로 급히 총회를 열어(온라인 커뮤니티 운영하던 가락이다) 활동 멤버를 정하고 정식 이름을 붙였다. 5. 인간은 남을 불러들일 수 있는 공간의 주체일 때나 환대의 마음이 생겨난다. 어떤 환대들이 쌓인 결과 예기치 못한 형태로 공동체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일다≫ 기숙사에서 원룸으로, 거실이 있는 투룸에서 공동체로

일다

≪일다≫ 기숙사에서 원룸으로, 거실이 있는 투룸에서 공동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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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9일 오전 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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