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수 복이 꽤 좋았던 나도 복병을 만난 적이 있다. 사수는 본인이 없으면 약 500명의 임직원을 가진 회사가 안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지만, 객관적으론 그냥 능력이 없었다. 사수는 본인을 속이 꽉 찬 감자 그 자체라고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나는 그를 질소 반 감자 반으로 과대 포장된 감자칩이라 생각했다. 사수가 70%의 수분으로 구성되었는지, 질소로 구성되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팀 생활이 시작되었다. 과대 포장된 감자칩에 분노한 시민들을 아는가? 그들은 기어코 갑자칩을 엮어 보트를 만들고, 한강을 건넜다. 차라리 사수가 감자칩이라면, 사수를 엮어 한강을 건너가고야 말 텐데. 그래서 결단코 그의 무능을 증명해 낼 텐데. 지금부터 본인의 능력을 과대 포장한 사람을 감자칩이라 명명해 보겠다.
일이라는 것이 그렇듯 너와 내가 엮여, 잘잘못을 따지기 치사한 상황이 많았다. 질소 함유량이 높은 사람들이 쓰는 단어 쌍이 두 가지 있다. '내가-(부정)-어쩔 수 없이', '원래는-(부정)-이번에만'. 응용해 보자면 "내가 여기서 이럴 사람이 아닌데, 어쩔 수 없이 지금 잠깐.", "원래는 내가 이런 사람이 아닌데, 이번에만 대충하자." 도구를 탓하지 않고, 상황을 탓하는 것이 신종 장인의 태도인가요. 사회인의 매너처럼 잘못된 것을 지적하지 않고, 세련되게 천천히 멀어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그는 어쩌어어어어면 능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에 높은 연봉을 받고 있었고, 자신의 무능이 드러나기 직전까지 승진한 상태였다. 결정적으로 내 일을 조금씩 망치고 있었다.
본인의 능력을 실제보다 과대평가하는 사람은 '나라는 질병(Disease of Me)'에 걸려있다. 농구 감독 팻 라일리에 따르면 프로팀이 따르는 궤도가 있다. 첫 번째로 '순수한 상승(Innocent Climb)'이다. 컨디션도 좋고, 팀십도 좋고, 경기도 잘 풀리고, 하나로 똘똘 뭉쳐 상대 팀을 격파하는 데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단계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승리가 계속되고 언론의 관심을 받게 되면 팀십은 슬슬 무너지고, 자신의 기여도를 머릿속으로 계산하게 된다. 그리고 거의 예외 없이 선수들은 '나라는 질병(Disease of Me)'에 걸리게 된다. 본인은 베리베리 스마트하고 나이스하기 때문에 쏘 스페셜하고, 그렇기 때문에 노멀한 피플은 마이 프라블럼을 언더스탠드하지 못할 것이라는 착각이다.
H.O.T에서 나와 솔로 데뷔한 강타의 인터뷰를 보면 '인기 5분의 1은 내 것으로 생각했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자신의 기여도를 1/N로 계산하는 건 거대한 착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는 대목이다. 어떤 스타 플레이어도 팀 없이 홀로 성공하지 못한다. 자신의 성공은 사실 팀에 기반한 것이지, 생각보다 기여도가 낮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감자칩들은 이미 자신의 기준에서 너무나도 성공했다. 그러니 이런 이야기가 귓가에 들릴 리가. 진짜 감자칩이라면 바늘로 칵! 찔러 질소를 빼고 작게 만들 텐데. 사람에게 흉기를 쓰면 안 되기에 다른 방법들을 제시해 보려 한다.
첫 번째는 부셔야만 하는 단계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보면 제아무리 헤라클레스라고 하더라도 무조건 실패하는 시간을 겪는다. '카타바시스(Katabasis)'라고 부르는 이 단계는 '밑바닥으로 떨어지기'라는 뜻이다. 중요한 깨달음을 얻게 되는 순간은 내가 알던 내가 사실은 별로였으며, 내가 믿던 신념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때 온다. 이를 위해 감자칩에게 망해도 팀에 큰 영향이 없는 일을 단독으로 맡겨야 한다. 중요한 것은 '단독으로'이다. 갑자칩은 일이 망할 경우, 외부 귀인으로 돌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간중간 계속해서 마감 기한, 기대 수준, 구체적인 결과물을 공지해야 한다. 감자칩의 원망을 사지 않기 위함이다.
두 번째는 인정시켜야만 하는 단계다. 1단계에서 본인의 '메타인지(Metacognition)'의 부족을 참회하고 눈물을 흘린다면 진정한 감자칩이 아니다. 결과물이 나왔을 때, 감자칩의 결과물이 목표수준을 달성하였는지, 마감 기한을 지켰는지에 관하여 스스로 말하게 해야 한다. 자신의 부족한 결과물을 인정하게 만들기 위해서이다. 아니면 논문 쓰기의 '동료 평가(peer review)' 방식을 차용해도 좋다. 팀 내에서는 누구나 유능하고 신뢰받는 사람이고 싶다. 누구가 되었든 이런 시간은 괴롭다. 때문에 감자칩이 너무 놀라 빵 터져버리지 않게, 심리적 안전감을 형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낙인을 형성하려 모인 것도 아니고, 저성과를 탓하는 것도 아닌 그저 공유와 피드백일 뿐이라고 설명해야 한다.
세 번째는 굳혀야만 하는 단계다. 헤밍웨이는 <무기여 잘 있거라>에 "세상은 모든 사람을 깨부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부서졌던 바로 그 자리에서 한층 더 강해진다. 그러나 그렇게 깨지지 않았던 사람들은 죽고 만다."라고 남겼다. 피드백 직후 바로 1on1을 진행하는 것이 좋다. 자기 능력을 숨길 여지가 없는 역도 선수가 아니고서야 말과 글은 명백한 수단이 없기 때문에 친숙한 '부정하기', 즉 '적극적 무지'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과히 솔직히 말해, '어떻게 이런 사람들이 나한테 이렇게 말을 할까? 본인을 뭐라고 생각하지?'라고 생각하고, 나아가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라는 복수심을 품는 것이 에고가 강한 사람의 프로세스이다. 그렇기 때문에 리더는 최대한 사실만을 건조하게 전달하는 것이 좋다. 아무 이야기나 갖다 붙여 공백을 메우려는 감자칩에게 휩쓸리면 안 된다.
모임에서 가장 아는 것이 적은데도 불구하고 회의를 이끄는 감자칩, 연차만 높은 주제에 전문가에게 일침을 놓는 감자칩들을 모두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사실은 나도 감자칩일지 모른다. 나에게 성취감을 안겨다주는 정보만을 취사선택하고, 희망을 강화해주는 피드백에만 집중하는 경향은 사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하지만 감자칩은 진짜 감자들을 몰아낸다. 유능한 감자들에게 이직과 전배를 생각하게 하고, 동기와 업무 몰입을 저하하며, 업무 부하를 높인다. 그렇기 때문에 감자와 감자칩들을 선별하는 작업이 중요한 것이다. 허니버터칩이어도 용서할 수 없고, SNS에서 유행하는 프랑스 최고급 감자칩도 안된다. 감자칩 타도! No Gamjachip In My Backy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