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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만 개의 투자 관련 기사를 읽었지만, 이보다 내게 큰 가르침을 준 기사는 없었다. 그래서 이 기사로 뉴스를 시작하겠다. "20년 전 일본 고베(神戶) 대지진을 취재하던 중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충격받았던 장면이 있다. 지진 한복판, 70대 노부부의 집이 무너져 부인이 밑에 깔렸다. 남편이 옆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숨 가쁜 구조 작업이 진행된다. 이윽고 구조대는 부인을 꺼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현지 로컬 TV 방송은 이런 과정을 거의 실시간으로 중계해준다. 오싹 소름이 돋았던 것은 그다음 장면이었다. 시종 꼿꼿한 자세로 서 있던 백발의 남편이 부인의 죽음을 확인하고는 구조대에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몇번이고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를 외치는 것이었다. " 같은 사건에 우리나라 사람은 어떻게 반응할까? 일본이 우리나라에 하는 꼴을 보고 있으면 무책임하기 짝이 없지만, 그들은 스스로에게도 무책임하기 때문에 무섭다. "책임 소재를 분명히 가리지 않기 때문에 일본이 무책임한 나라가 됐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유족들은 정부가 최선을 다했고 자기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란 신뢰를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개인이 국가와 일체가 되는 '공(公)의 가치관'이다." 남에게 스스로에게도 무책임한 사람과 남의 책임의 경중을 따지고 사건마다 범죄자를 중죄로 다스리지 못해 안달인 사람의 20년 후 누가 더 큰 발전을 해 나갈 것인가? 둘 중 누가 실패하면 손가락질 받을 도전을 자신의 인생에서 시도하고, 또한 실패를 하고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일본의 잘못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그들의 논리가 강자의 논리임에는 반박할 수 없다. 투자에서 피해자와 피의자는 대부분 같은 사람이다. 내가 결정한 투자가 나의 자산을 까먹기도 불린다. 누군가는 한 번의 투자 실패로 좌절하고 한강에 뛰어들겠지만, 무책임한 사람은 아픈 실패에도 일어날 수 있다. 모든 상황에 무책임하란 말이 아니다. 투자에서 그래고 인생의 도전에서 조금 더 자신을 용서할 필요가 있다. 그게 안된다면 조금 더 무책임할 필요가 있다. 무책임한 사람만이 죽고싶을 정도로 아픈 실패를 겪고도 앞으로 나아간다.

[박정훈 칼럼] 이런 日本이 소름 끼치도록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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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칼럼] 이런 日本이 소름 끼치도록 무섭다

2019년 8월 11일 오전 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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