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매우 훌륭한 개발자께서 시중에 번역되어 나오는 번역서의 품질이 너무나 마음에 안 드셨던 나머지, 직접 출판사와 의견을 교환한 끝에 샘플 번역을 해서 출판사에 전달했다가 출판사에서 거절하는 일이 발생한 모양이다.
사실 능력이 출중한 분들에게는 번역이라는 작업이 쉬운 일처럼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다른 사람의 번역이 너무나 성에 차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분이 이 글을 보실지는 모르겠으나, 알고 있는 것을 말로 설명하거나 글로 써내려가는 것은 어떤 분야에 대해 잘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과는 또 다른 전문적인 영역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딱히 생각해 보지 않으신 것 같았다. 출판사가 거절한 내용에 대해 열변을 토하시는 그 짧은 글에서조차 여러 권의 전문서적을 집필하고 번역해 온 입장에서는 번역 품질이 충분히 예상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 분 말씀대로 번역하는 대상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을 때 발생하는 오역은 큰 문제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오역만큼이나 서적을 집필하거나 번역할 때 필요한 것은 읽는 사람을 얼마나 고려하고 있는가도 매우 중요하다. 번역이 올바르면 다른 것은 다 무시되어도 된다면 진짜 ChatGPT로 번역하면 그만이다. ChatGPT는 아마 나 뿐만 아니라 그 분보다도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을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비용을 들여가면서 책으로 출판하기 위해 해당 분야의 전문가인 번역가를 고용하고, 또 디자인하고 편집에 비용을 써가면서 출판하는 것일까. 사실 나 같은 경우 300페이지 영문 서적 기준 번역에 드는 시간은 대략 2개월이고, 일어나 중국어 서적은 이 보다 더 짧은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책으로 나오는데는 짧게는 5개월, 길게는 1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되기도 한다.
일단 원서와 번역서가 동일한 독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지 않은 경우가 가끔 있다. 국내에서는 해당 분야가 아직 무르익지 않았거나, 수준이 낮은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 그 서적을 그대로 번역하게 되면 안 하니만 못한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경우 약간의 문제를 감수하더라도 문맥을 수정하거나 난이도를 낮추는 경우가 발생한다.
또한 편집 과정에서 편집자가 번역된 원고를 잘못 이해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가 발생하면 안 되기 때문에 편집자가 1차로 편집한 내용을 역자가 다시 일일이 원래대로 복구하는 경우도 가끔 있다. 물론 대부분의 출판사는 이러한 일이 발생하기 전에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역자에게 먼저 질의를 한다. 하지만 이게 꼬이는 경우가 드물게 있을 수 있는데, 역자의 번역 수준이 낮을 때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
이런 여러 단계의 난관을 모두 극복하더라도 결과물이 역자나 저자, 또는 독자의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그럼 그 책은 낮은 판매량을 보이는 상황이 발생하고, 출판사는 해당 역자를 꺼리게 된다. 그리고 출판사는 의외로 서로 네트워크가 구축되어 있기 때문에 A라는 출판사에서 번역한 책의 품질이 훌륭하다면, B라는 출판사에서 번역 의뢰가 들어오기도 하고, 반대로 책의 품질이 열악하다면, 해당 역자는 다른 출판사에서도 번역이 힘들어진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알고 있다고 해서 그걸 남에게 전달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사람이 더 나은 책을 번역하거나 집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알고 있다고 해서 남에게 교육하거나 책으로 집필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라면, 교육이 왜 별도의 영역에 속해 있으며, 교사를 양성하는 교육대학이나 사범대학이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한 번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말하고 싶은 것은, 상대방에게서 나를 반박하는 어떤 이야기를 들었을 때, 높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일수록 타격을 많이 입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본인을 돌아보는 것보다는 상대방의 문제를 더 파고 드는 경향이 있다. 상대방도 사람인지라 이렇게 얼굴을 붉히고 나면 이제 더 이상 연을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 되어 버리기도 한다.
기능 하나 추가하겠다고 코드를 뒤집어 엎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주절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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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28일 오후 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