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와서 그런가 출근길 지하철이 연착되어 남기는 주저리 글.
6월 입사하여 3개월 수습을 지나 추가 3개월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회사는 3, 6, 9 라고 3개월마다 고비가 찾아온다던데, 이번에도 찾아왔다.
사실 이전 회사들은 3개월마다 권태기가 왔었다. 이 일을 계속하는 게 맞나, 같은 일 반복하니까 재미없다, 이걸 출시해서 세상에 어떤 가치를 남기는 거지 같은 생각을 했었다.
오, 이번 회사는 다른 고비다. 이러다 짤리면 어쩌지. 나 무능한 기획자인 게 뽀록나는 거 아냐?
돌이켜 보면 그동안은 '화장품 개발 전반 프로세스를 잘 핸들링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물론 상품 기획에 시간을 진짜 많이 들였지만, 홈런을 치진 못했다. 안타 세 번, 병살타 한 번, 나머지는 애매한 땅볼 정도. 결과가 좋아야 좋은 기획자인가. 그렇다면 난 애매한 기획자 같은데.
음, 입사하자 마자 맡았던 프로덕트는 결국 접는 수순이 되었다. MVP 치고 일년반이나 끈 프로덕트이니 접는 게 맞았다. 왜 내가 접어야 하는가, 나는 들어와서 하라고 해서 한 죄밖에 없다! 라는 억울함이 솔직히 있긴 했다. 하지만 단종 결정이 원래 제일 어렵다는 걸 알기에, 차라리 내 손에서 떠나보내는 게 나은 것 같단 생각도 든다. 대채로 애매하게 팔리는 제품 단종 결정은 아무도 하기 싫어한다.
심폐소생에 실패했다. 내가 손을 대기 전부터 이상했던 프로덕트였다고 변명을 하면서도, 아 내가 엄청 뛰어난 기획자였다면 살릴 수 있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신규입사자여서 성과는 내야 했고, 그러다 보니 작은 개선에 매몰됐고, 결과적으로 데이터를 봤을 때 큰 개선은 없었다.
처음 입사하여 프로덕트를 만났을 때부터 '이런 거면 그냥 새로 만들면 안되나요'를 계속 말하고 다녔다. 하지만 내 밥줄 평가가 달려있다 보니 '일단 심폐소생 해볼게...?' 하면서 눈치봤던 것 같다. 갈아 엎고 0부터 시작하기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까. 3개월 뒤에 내가 있을지도 없을지도 모르잖아.
내가 맨파워가 쎘다면, 내 말의 영향력이 큰 사람이었다면, 그러면 시간을 더 달라고 하고 갈아엎을 수 있었으려나. 돌아간다 해도 아니었을 것 같다.
처음부터 잘못된 프로덕트는 개선한다 해도 안되는 게 맞을까? 그래서 피봇 결정을 빨리 해야 하는 건가. 잘못된 프로덕트가 개선을 거쳐 좋아지는 경우는 없나.
으아아. 지치는 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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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27일 오전 1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