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무엇이든 시작은 언제나 찬란합니다.

새 학기를 맞이하는 학생은 이번에는 다르리라 다짐을 하며 공부도 열심히 하고 친구들과 두루 친하게 지내며 핵인싸가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취업이나 이직을 하는 직장인은 이제부터 성공 가도를 달려 보리라 희망을 품고 일도 열심히 하고 동료들과 원활한 협업을 상상하며 우수 사원이 되리라 꿈을 꿉니다.

사업을 시작하는 창업가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대한민국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 파란을 일으키는 회사를 만들겠다고, 조직 문화도 유래에 없던 아름다운 이야기로 가득한 환경을 조성하는 목표를 갖습니다.

무엇을 시작하는 누구나 꿈과 희망을 품고 멋진 미래를 상상합니다. 그리고 미래를 상상으로만 두지 않고 반드시 실현하겠다고 굳게 다짐합니다.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찾아와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전의를 불태우기도 합니다.

하지만 열정의 불이 사그라드는데 필요한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현실의 녹록지 않은 장벽을 만나면 절대 굻지 않겠다고 다짐한 무릎을 털썩 내려놓습니다. 세상에 의지로 되는 일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좌절합니다. 그러나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겐 다음 학기, 다음 회사, 다음 사업이 있다고 위로합니다.

누가 119에 신고하여 소방관 아저씨가 출동한 것도 아닌데, 첫 시작에 불을 지폈던 열정이 너무 쉽게 소멸되는 것을 우리는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저처럼 40년 이상 인생을 산 분들은 아마도 새로운 시작의 각오가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출발이 특별히 기대할 것도 설레거나 두려울 것도 없습니다. 어차피 사람이 사는 인생길은 거기서 거기라고 믿습니다.

회의론도 아니고, 비관론자도 아니지만, 새 출발의 의미 부여를 너무 과도하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는 긴 인생 동안 한 지점일 뿐 새로 시작하는 무언가가 획기적인 전환점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스티브 잡스 선생님 이야기처럼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모여 면이 된다는 이론에는 동감하지만, 점들이 모두 특별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어제처럼 열심히 살고, 내일도 기쁘게 맞이하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믿습니다. 꼭 이번엔 다르리라 다짐하고 실제로 달라진들 무엇을 더 특별히 얻을 수 있겠습니까? 더 얻으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고, 희망하는 만큼 더 얻지 못해서 실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딱 필요한 만큼만 얻고 그 이상은 욕심을 버리는 것이 현명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따라 열심히 실천하는 것은 필요하고 좋은 행동입니다. 다만, 그 목표가 특별히 원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시작의 목표가 반드시 원대해야만 큰 성공을 얻고 멋있어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목표가 작아도 괜찮습니다. 소박한 꿈이 초라한 것이 아니라 꿈을 크게 꾸다가 포기하는 것이 더 안타깝습니다.

새로운 곳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과 다 친하게 지낼 수 없습니다. 사람은 각자 개성을 갖고 있으며, 성향에 따라 선호가 있습니다. 선호가 있으면 비선호도 존재합니다. 모든 것을 좋아하는 것이 이상한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을 다 좋아하는 것은 오직 신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새로운 시작에 꼭 핵인싸를 꿈꿀 필요는 없습니다. ‘나와 다른 사람들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겠다는 각오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바이오리듬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몸과 마음의 컨디션이 좋은 날도 있고, 그렇지 못한 날도 있습니다. 컨디션이 좋은 날은 밝고 맑을 수 있지만,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은 날은 어둡고 그늘집니다. 우리의 바이오리듬이 항상 좋을 수 없는 것과 같이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품은 열정도 매일 활활 타오를 수 없습니다.

좋을 때 좋고, 안 좋을 땐 가만히 좋아질 때를 기다리면 됩니다. 굳이 열정에 기름을 부어 인위적으로 자신을 채찍질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우리가 해야 할 일과 만나는 사람을 아끼고 잘해 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니 오늘을 건강하게 보낼 수 있는 정도의 에너지를 지혜롭게 소비하는 우리가 되길 희망합니다.

새로운 출발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