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3월, 한 술집에 수십 명의 대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두 무리로 나뉘어 있었는데, 한 무리는 선배 무리였고, 나머지 한 무리는 신입생 무리였다. 그 자리는 소위 ‘신입생 환영회’ 였고, 이제 막 ‘사발식’을 거행하려는 순간이었다. ‘사발식’은 간단히 말해서, 사발에 소주 1병을 붓고, 그것을 신입생이 한 번에 마시는 의식이었다. 선배들은 모두 그 의식을 거친 사람들이었고, 새로 들어온 신입생들에게 ‘사발식’을 지시했다. 하지만, 신입생들의 반응은 선배들이 기대한 것과 달랐다.
“왜요?”
신입생들은 의문이 들었다. ‘왜 내가 이걸 마셔야 하지? 난 마시기 싫은데?’. 그들은 선배들과 싸우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 술을 마실 생각도 없었다. 결국 신입생들은 ‘사발식’을 진행하지 않았고, 사발에 있던 소주는 선배들이 마셨다.
z세대의 상징적인 언어로 ‘왜요?’가 회자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왜요?’는 지금의 기성세대인 x세대도 똑같이 구사했던 기술이다. 그들은 기성세대의 문법을 거부했고, 스스로 새로운 문법을 만들어 나갔다. 마치 지금의 z세대가 그러는 것처럼 말이다.
미디어나 마케팅처럼 사람을 그룹으로 구분지어야 하는 분야들이 있다. 모든 사람을 하나의 스펙트럼에 넣지 않고, 몇 개의 단절된 바구니에 담긴 서로 다른 과일들처럼 다루는 것이 익숙한 분야들이 있다. 그런 분야가 사람들의 생각에 미치는 영향력은 매우 크고, 그러다 보니 사람들도 그런 문법에 맞춰 생각을 하고 말을 하게 된다. 하지만, 실제는 다르다. 세대와 세대는 단절되어 있지 않다. 연결되어 있다.
세대가 갖는 분명한 특징은 있다. 그런데 그런 특징은 그들이 성장한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그 환경은 이전 세대가 만들어 놓은 환경이다. 말하자면, z세대의 특징은 x세대가 조성한 환경이 영향을 미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물론, x세대 역시 이전 세대가 조성한 환경의 영향을 받고 자랐다.
다시 사발식으로 돌아가 보자. 1995년의 신입생들은 이전의 신입생들과 달랐다. 그런데, 신입생들만 달랐을까? 아니다. 1995년의 선배들도 이전의 선배들과 달랐다. 만약 그들이 10년 전의 선배와 같았다면, 신입생들과 선배들 사이에는 큰 충돌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충돌은 없었다. 선배들은 사발식을 거부하는 신입생들을 존중했고, 그래서 따라 놓은 술을 자신들이 마셨다. 그리고, 신입생들과 즐겁게 어울렸다.
변화는 부드럽게 진행된다. 세대를 거쳐 이루어지는 변화에 단절은 없다. 세대와 세대는 연결되어 있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해하려고 하면 이해 못 할 것이 없고, 함께 하려고 하면 함께 못 할 것이 없다. 우리는 같은 시간과 공간을 살아가는 하나의 공동체다.
#에세이 #세대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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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6일 오후 9:33